[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그의 6週忌(주기) 맞아 敎訓(교훈)을 되새긴다
敎會(교회ㅏ)에 「回春(회춘)」을 가져다 준
마지막 두달 超人的(초인적) 鬪病(투병) 甘受(감수)
徹底(철저)한 奉仕者(봉사자)일뿐
招人(초인) 아닌 純粹(순수)한 人間性(인간성)이 바탕
6월은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생애를 마친 섭리의 목자 요한 23세 교황의 6주기다. 「지상의 평화」 교서를 최후로 고통중에서도 미소와 기구로써 자기의 목숨마저 참된 평화를 위한 희생의 제물로 바친 착한 교황의 최후는 모든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우리는 요한 23세의 개인비서였던 까뽀빌라 주교가 교황의 최후의 순간순간을 수록한 회상록을 연재함으로써 항상 새롭고 감격적이며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역사의 귀중한 한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고자 한다. 【편집자】
최후의 부활
<죽음이 아닌 참삶을>
이 회상록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요한 23세 교황의 최후의 2개월동안의 언행을 수록 발표하는 것이며 목격자의 허식없는 증언임을 밝혀둔다. 당시 교황 개인비서였던 까뽀빌라 주교의 5월 1일부터의 증언을 싣기전에 4월 한달동안의 동정을 요약한다면 교황께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오전 5시에 기침 7시에 미사를 지냈다. 간혹 병이 침중해 중단된 때도 있었으나 고비를 지나면 즉시 규칙생활과 정상업무를 계속했다.
매일 국무장관 추기경과 차관을 접견하였고 자주 자기의 고해신부인 까바냐 신부를 맞아 오랜 이야기를 했다.
▲4월초에는 자기가 후르시초프의 딸 라다와 「이스베스치아」지의 주필이었던 그의 남편 아주베이를 접견한데 대한 문의와 비평으로 약간 상심하였다.
▲4월 4일과 5일에는 자기의 형과 동생인 사베리오와 요셉을 만나보시고 사진사를 불러 사진을 찍게한 후 『아마도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나의 형제들을 보는 기회가 될것이다』라고 했었다.
▲4월 7일에는 변두리 「다르치시오」본당을 방문했었는데 교황께 대한 존경심의 표시로 선거 「포스타」를 철거하고 선거운동도 일체 중지하고 교황을 열렬히 환영했다.
▲4월 9일 오전9시30분 공의회준비위원회에서 증정한 금「펜」으로 「지상의 평화」 교서에 서명하고 22시30분에는 「텔레비」를 통해 『나는 평화의 집 건설을 위한 바탕 즉 하느님이 정하신 질서에 대한 존경 그리고 인격의 존엄성의 옹호를 설명했을 뿐 아니라 여러가지 방안을 제기하면서 이 평화의 집 건설을 위해 필요한 돌처럼 한사람 빠짐없이 각자의 부담도 있다는 것을 아울러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같은날 교황께서는 헤링 신부 著의 「일치의 표인 2차 바티깐 공의회」란 소책자를 만족하게 읽었다. 심한 통증이 더욱 자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비를 넘기자 여전히 서슴치않고 격무를 치루었다.
▲4월 12일 성금요일에는 시의들이 교황께서 졸도할까 불안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베드로」대성전에서 십자가 공경예절에 참석하였다.
▲성토요일에는 조각가 만쑤氏를 접견하고 그가 만들고 있는 「베드로」 대성전의 문(일명 죽음의 문) 축성식에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날 저녁에는 부활절 「라디오 메시지」를 방송하고 2시30분에는 광장에 모인 「택시」운전사들에게 부활축복을 주기위해 창문앞에 나섰다. 자정에는 『천상의 모후여…』를 외우면서 부활을 고하는 시내 성당 종소리를 들었다.
▲부활아침 교황께서는 무척 피곤하게 보였지만 여전히 일곱시에 미사를 지내고 정오에는 「베드로」대성전 「발코니」에서 부활 「메시지」를 낭독했다. 『부활의 인사는 죽음이 아니고 참삶을, 분열이 아닌 평화를, 허위가 아닌 진실을, 억압이 아닌 빛과 맑음과 상호존경의 승리를 말하는 밝은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부활 다음 월요일 자기 일기장에 『부활을 잘 지낸 것은 흡족하다. 그러나 몸은 몹시 쇠약해졌다. 집에서 고요히 미사를 지내고 그리고 천주님께 완전히 내어맡기자』고 씌여있다.
▲이주간 내내 오전7시에 미사를 지내고 주요일에는 「베드로」대성전의 일반알현에 나왔으나 오후에는 초조한 고통 속에서 지냈다. 목요일에는 「다마소」 내정(內庭)에서 이태리 청년농부들을 접견하고난 다음 잠간동안 역사서적과 교부들에 관한 서적을 보다가 수기(手記)에 『오늘 갈디노 성인께서 많은 호두선물을 주었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금요일에는 안나 프랭크의 부친을 접견하면서 그에게로부터 딸의 일기를 선물로 받았다.
▲토요일 미사후에 무척 피로하게 보였으나 10시에는 어김없이 접견을 하고 시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도록 끌었다. 오후에는 다시 고통이 심했으나 이태리 「라디오」 방송국이 마련한 「콘첼트」에 고통을 내색지 않은채 참석했다. 거실에 기진해서 돌아와 즉시 누웠다. 주위에서 측근들이 「로사리오」를 계속 바쳤다.
▲월요일 3시간반의 접견
▲화요일 공의회 의안준비 작업.
▲수요일 일반알현
▲목요일 산악부대 접견.
▲금요일 「또리노」 대주교 풋사띠 추기경에게 그의 주교서품 39주년 축하전문을 보내고 「발산」평화상 수여식의 간소화를 지시
▲토요일 개인알현후 병세 악화. 시의의 도움으로 극복. 밤2시부터 아침6시30분까지 기구로써 밤을 새우고 8시에 미사를 지내고 11시에 과학자들을 접견. 이렇게 4월 한달을 보내고 수기에 『「나는 나의 허약함을 자랑하노라」한 성경말씀은 나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이렇게 복잡한 시대에 교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노력을 암시하는 말로서 위안이 된다』고 기록해 놓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