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狀(이상) 없읍니까? 가톨릭 活動團體(활동단체) 診斷記(진단기)] ⑧ 平新使徒織協議會(평신사도직협의회)
急造(급조)보다 알찬 精進(정진)을
本堂運營(본당운영) 參與(참여)에 神父(신부) 難色(난색) 表明(표명)
발행일1969-06-01 [제671호, 3면]
한국교회의 장래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활동할 것인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평신자 지위향상이란 일종의 권리쟁취란 견지에서만은 아니다. 바로 공의회가 밝힌 「하느님의 백성」에 起点을 둔 「보편적 사제직」과 「공동성」에 입각한 주교 · 성직자 · 수도자와 평신자를 포함한 전체 신자의 「선교사명」 수행이란 대전제 때문이다. 이같은 시대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협의회의 장래는 낙관적이 아닌것 같다. 첫째 난점은 얼마의 신자들을 제외하곤 「평신도사도직」이란 마치 국민학교 학생에게 중학교의 幾何문제를 숙제로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지도측인 성직자도 그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는 지식을 갖지 못했거나 설립 · 육성의 초보적 「프로그램」마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3차 세계평신도대회에 참석했던 대표들을 앞장세워(사실 이 대표들 중에도 대표라기엔 부족한 인사가 있었다) 『남이 장에 간다니 지게라도 지고 가는』格의 전국협의회가 작년 7월 23일 대전서 하루아침에 창립됐으니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아무래도 「에리트」를, 아니 아쉬운대로 교회활동의 앞장을 설 일꾼을 기를려면 수삼년이 걸릴 것이니 上向式은 요원하여, 지도해가면서 下向式 창립 · 조직의 方案모색도 있을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下向式 방법의 성공을 위해서도 단하나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참여자나 지도층인 성직자들의 「성의」와 「욕구」인데 불행히도 그것이 없는 것 같다.
바로 이 문제가 평신도사도직에 앞선, 한국교회 전반에 걸친 현실적 「암적 장애」가 아닐까?
至當派나 무관심 一邊倒인 타성적 신앙생활에 젖은 신자들 앞에 평신도사도직은 牛耳讀經일 뿐인 것 같다.
공의회에 의한 괴도적 현상으로 빚어진 성직자들의 불안(지위 · 권리)과 의욕상실도 마찬가지다.
공의회정신을 그릇되게 이해한 방종한 자유주의적 일부 신자들의 행동은 질서와 협력정신 및 형제애를 파괴할 염려가 있다.
단체간이나 회원간의 종적의사소통 · 대화 등이 횡적관계보다 소홀하다.
많은 조직 · 활동 · 의식의 試行에서 밎어지는 예측되는 혼란은 교구마다 다른 형태의 사목위원회를 낳듯 사도직협회도 마찬가지다. 산하 교구조직들이 어떤 곳에서는 본당 운영위원회를 기초로 하는가 하면 어떤 교구는 액숀협의회만으로 대표하고 혹은 수명의 개인을 대표로 전국 기구에 파견하되 관측만 하게하는 등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교구 신부들은 평신도협의회 회칙에 『본협의회는 본당운영을 심의처리한다』고 규정한 것이 본당신부의 권위를 저하시키고 경제권을 평신자가 장악 내지 간섭하게 된다는 이유로 이의 발족 혹은 육성을 반대 · 냉담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교구의 경우 협의회가 급진적으로 결성됨으로 신부 · 신자간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서서히 진전시켜달라는 호소를 교구장에게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황은 초창기에서 모면할 수 없는 모색의 과정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혹은 근본 의의나 설계=계획은 외면한채 지엽적인 문제에만 집착한 형국으로도 볼 수 있다.
평신사도직의 확고하고 빠른 形成과 힘찬 출발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아무도 또한 이의 장래를 예언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당사자인 평신자나 지도층인 성직자(주교 · 신부)들에게 똑같이 원점복귀나 재정비, 심지어는 문제점의 검토계획이나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신자나 성직자(심지어 지도신부까지) 할 것 없이 평신자사도직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 다시말하면 한국적 결점인 司牧主導者인 주교들이 주교를 보조할 전문가제도를 활용않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사도직도 부업(副業)으로 머물고 있을 것이 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