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23) 갈림길 ⑦
발행일1969-06-01 [제671호, 4면]
현주의 마음을 꿰 뚫어 보는듯 그러나 그 마음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듯 현주 이모는
『명목이야 아무거건 무슨 상관있어? 요는 출국할 수 있느냐의 문제야. 가놓고 볼일 아니겠어? 거기가서 학교에 들어가는거야. 장학금이나 타게 돼보란 말야…』
이쯤 이야기하면 다 알것이 아니냐는 투로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래도 현주는 선뜻 내켜지지 않는 심정이었다.
『좋긴 하지마는…』
『좋긴한데?』
『…』
『응 알겠어. 그게 현주가 틀렸다는거야. 미국에 떵떵거리고 유학을 간다구들 하지않아…그 무슨 슼라라쉽이 어떻구 저떻구 하구 김포비행장이 떠들석하게 떠나가지 않아… 미국에 가서 뭣들하는지 알아? 남학생은 식당의 접시 씻는 일을 하는거야. 여학생은 또 뭘하는지 알아? 식모살이야, 가정부라는거야. 어느 여가에 공부를 해? 그리고는 돌아와서는 무슨 대학의 무슨과를 어쨌다느니 또 야단법석이야. 대학에 전임으로 나가고… 그런것에 비기면 너야, 제대로 공부하게 될거지 뭐겠어. 출국 수속하기 위해 방편으로 붙이는 명목을 가지고 새침해서 오밀조밀 <좋긴 좋은데>하는 네 속알머리를 도통 모르겠구나…』
이모는 정말 현주의 속알머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듯이 그 고은 얼굴마져 낑그리기까지 했다.
현주는 생긋이 웃어보였다. 이모의 성의가 이렇듯이 극진한데 공연히 선뜻 달라붙지 않은게 우선 예의상 안된 일이라고 뉘우쳐졌기 때문이었다.
현주의 풀어지려는 표정을 보고 이모는 더욱 열을 올렸다.
『거기가면 집에서 침식을 할게 아니야? 그것만도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이겠어. 약간의 용돈과 등록비를 벌면 되는건데 그 길은 미국과는 달라. 별로 고생스럽지 않데. 그뿐 아니라 점잖게 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야. 가령 우리말을 가르친다든가… 어떻든 네 이모부의 직책이 배경이니까 무슨수가 생길거 아니야. 네가 원하던 건축설계를 한번 끝까지 전공해 보는거지… 그러다가 좋은 자리가 있으면 경사를 맺어도 좋고…』
이모는 현주의 무릎을 치면서 화려하게 웃었다. 어디까지나 세상을 순풍에 돛을 단 것 같이 보고 있는 이모다. 그리고 그렇게 오늘날까지의 인생행로(人生行路)를 걸어온 이모다. 현주의 생애도 자기의 것처럼 그렇게 순탄일로(一路)일 것으로 확신해 말했다.
현주는 그런 이모의 생활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지나치게 낙관주의(樂觀主義)고 어찌보면 꿈많은 소녀적인 감상(感傷)이라고 평소부터 경멸해 오고 있었다. 지금도 역시 그런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뇌이는 말이 구수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이모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할 마음은 생겨지지 않았다.
그저 생글생글 웃기만했다.
『너같은앤 처음봤어. 어린 케이스가 있다면 펄펄 뛰면서 야좋다 좋다 하는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고 정상적인 처지야. 그런데 너는…』
힐끔 현주를 보고나서 이모는
『그래서 네가 좋기는 하다마는. 경솔하거나 부박하지 않거든… 이모부두 그점을 높이 평가한거야. 현주만은 여류학자로 제전공하는 길에서 대성(大成)시켜주는게 국가로 보아 보람있는 일이라는거야. 대뜸 내 제안을 들어주었거든… 남은 것은 네 승낙이고 그리고 남은 것은 수속절차야. 물론 수속절차라고 해도 그런 케이스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든지 획득한 뒤의 일이지마는 그저께 저녁에 들어와서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였더. 그래서 어제 너희집으로 뛰어간거야…』
무척 열이 있는 성격이기는 하지마는 이모가 이렇게 현주를 데리고 가려고 권하는데는 현주만을 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활달하고 사교적인 이모일지라도 외국에 나가서의 생활에서 생길 수 있는 고적이 무서운 것이다.
현주를 데리고 감으로 해서 그 고적을 면하려는 뱃속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사실 현주와 함께 가게되면 자신도 거기서 무언가를 배워가지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래 얘기가 공연히 길어졌다마는 네 결정적인 의향을 얘기하란 말이야. 그래야 그렇게 신청을 하고 그 신청이 허가되면 그 다음부터는 여권수속으로 들어가는거야…』
이모는 눈을 빛내면서 현주를 보았다.
『글쎄요.; 좋긴 좋지마는… 너무도 뜻밖에 닥친 일이라 조금 생각할 여유를 주세요.』
현주는 여전히 침착했다.
『여유?』 이모는 못마땅한 듯한 표정이었으나
『좋아, 네 성격이니까… 얼른 생각해서 결정적인 회답을 해주어 이삼일내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마고 대답하고 현주도 집으로 돌아왔다.
『뭐라든?』
어머니가 몹씨 궁금하게 여기는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가 들은 대로 얘요.』
짧게 대답하고 현주는 제방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혼자서 만이 조용히 생각하고 싶어서였던 것이었다.
책상에 마주 앉았다. 이런때의 버릇으로 현주는 F.M 방송을 틀어놓았다.
마침 명곡감상시간으로 모찰트의 교향곡 41번 「쥬피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곡을 들으면서 현주는 마음의 눈을 안으로 돌려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면서 여러가지 경우를 더듬어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러는데
『누가 찾아왔구나.』
어머니가 문밖에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