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웨스트포인트」그레고리안大學(대학) 고요한 革命(혁명)
敎皇(교황)만도 15명 輩出(배출)
바오로 6世(세)도 이곳 出身(출신)
4百(백)16年(년) 傳統(전통) 바람은
第(제)2次(차)「바티깐」公議會(공의회)가
【로마 NC】 교황청 직영의 「그레고리안」대학은 차츰 전통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 혁명은 전세계의 많은 대학들의 경향처럼 폭력이나 완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레고리안」대학과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는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와 미국과의 관계와 같다. 이 대학을 다닌 교황만도 15명이며 후기의 교황 8명중 바오로 6세를 포함한 6명이 이 학교출신이다. 또한 전세계 5백71명의 주교와 45명의 추기경을 배출했다.
교회지도자가 될 이 대학 학생들은 검은 수단차림으로 고요히 학업에 임한다. 그들은 불평을 하지 않으며 그들답게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그러나 제2차 「바티깐」 공의회 후 차츰 나타난 새로운 기운은 이 존경 받는 4백16년의 전통의 무리를 흔들며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차츰 수단 대신 신사복을 입게 됐고 필요를 느낄 때는 동료들과 그들의 의견을 거침없이 털어 놓는다. 그러나 날뛰지는 않는다.
창문으로 돌을 던지거나 기물을 파괴하거나 강제적 건물점령 따위는 이들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쇄신에 대해 결코 수동적인 것은 아니며 학교전체를 위해 훨씬 더 진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이 대학교수들의 관찰이다.
그러나 역시 학생들은 변화를 원하며 쇄신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신학부 학생위원회대표선출 때는 이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신학부 학생 80%가 투표했다.
총 학생 약 3천명중 약 반수는 신학부 학생인데 신학부 정책결정권의 1/3은 학생대표가 갖게 됐다.
지난봄에는 9명의 교수와 2명의 강사 3명의 학생위원이 신학부의 규제와 교과과정을 마련했다.
이러한 일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전에는 전혀 없었다.
내년에는 5명의 예수회의 심리학자와 정신병학자 및 5명의 사목신학자를 교수진으로 하는 사목신학 연구소가 설치될 것이며 또한 「현대어 학부」가 생기게 되어 5가지 언어중 하나를 선택하여 전공케 된다. 이제는 「라띤」어를 주로하지 않는다. 한때 모든 학과를 「라띤」어로 배웠다. 아직도 대개 그렇지만 학생들은 「라띤」어가 현대세계에서 통하지 않음을 논하게 됐다.
또 하나의 변화는 공산주의에 관한 예수회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맑스」주의 연구「센타」인데 이「센타」도서관에는 2만부의 러시아 서적과 잡지를 비치할 것이라 한다.
이러한 노선의 일환으로 지난 9월 「그레고리안」대학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허브캐리어 신부가 교수대표로 수주일간 「모스코바」를 공식 방문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1966년 캐리어 신부를 동 대학 교수로 임명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캐리어 신부는 학생들의 요구를 이해할 뿐아니라 보수적인 교회 어른들의 걱정을 알기 때문이며, 한생들에게는 판에 박힌 고위성직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학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한편, 회의파(懷疑派) 주교들에게는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과격한 사상을 기르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는데 그의 역량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는 교황청 경영의 대학들과 서구의 거의 모든 신학교가 그렇듯이 이 학교도 사제성소의 감소가 고질병이 되고 있다. 학생들은 그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때도 난폭하게 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언제라도 사제되기를 거절할 수는 있는 것이다.
교실안에 장래의 추기경이나 교황이 앉아있을 지도 모를 「그레고리안」대학과 같은 경우, 성소 감소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