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發展(사회발전)과 勞動問題(노동문제)] 산업평화 위한 교회 관심
경제 불균형으론 平和(평화) 不可能(불가능)
分配保證(분배보증) 없는 한 경제발전 어려워
근로자계몽으로 勞動組合(로동조합), 정비·단결해야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노동은 비단 인간 生存의 수단 뿐이아니라 인간의 한 속성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은 그 자체 신선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상 인간의 한계성은 노동으로 인해 인간사회에 불균형·불평등 나아가서는 분쟁을 초래함으로써 이 勞使문제는 오늘날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인류가 당면한 근본과제로 등장했다. 평화·균등·자유 등 인류복지를 위한 근본과제와 직결된 노문동제는 교회의 최대 관심사요. 근본목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4일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사회발전과 노동문제」 대강연회는 교회에의 큐메니즘과 사회정의를 진작하는 의미에서 뜻깊은 모임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연사들의 강연을 전제한다.(편집자註)
공업화해 가는 산업사회에 대해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총무인 유진 블레이크 박사는 지난 6월 17일 국제노동조합 총연맹(ILO) 50주년기념식상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세계노조운동은 50년전 출발당시부터 교회와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나왔는데 중요한 이유로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항상 화해의 「메시지」이고, 그 화회의 실현은 사회정의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데서 이루어지는데, 20세기에 와서는 이런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해가는 기구가 노조운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독교운동이란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땅위에 실현하고자하는 전인류를 위한 평화, 정의, 균등, 자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빈곤에서 해방하고 같은 하느님의 자녀인 인류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모든 불평등을 추방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작년 스위든 「웁살라」에서 모였던 전세계교회협의회는 오늘날 지상에 있는 교회가 관심을 총집중하고 교회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실천할 당면 행동목표를 이 지상에서 인류를 분렬시키는 원인이되는 빈부의 차별과 인종차별을 해결하는 일로 결정했다. 즉 구체적으로는 북대서양지역에 사는 전세계의 20%밖에 안되는 인구가 전세계 자본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고 평화를 논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제적인 관계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나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소유를 한데 털어놓고 골고루 나누어 가지자는 식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고 경제발전, 사회발전 등을 통하여 해결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가난한 나라들. 가난한 계급의 사람들이 자기의 힘으로 발전하여 이미 발전한 나라들과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데 까지 급속히 끌어올리는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세계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과제를 「발전」에 두고 가톨릭·프로테스탄트·정교회·성공회 등 모든 교회가 이일에 혼연일체가 되어 합심하기로 하고 그 구체적인 실천은 각 국가에서 각 지역에서 그리고 국제적인 규모로 전개해 오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터를 잡고 있는 한국을 보면 매우 절박한 상태에 있다. 우리의 좁은 국토가 남북으로 갈려있는 비극에다가 우리 자체안에 농촌과 도시의 두개의 사회, 산업사회안에도 부유층에 속하는 경영주 측, 소위 「화이트·칼라」라고 말하는 원층과 「블루·칼라」라고 불리우는 근로자층과의 세층 사이에 평화적인 공존이 아니라 넘을 수없는 심층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상태를 이대로 방임하는 한 우리전민족의 공동과제인 민주주의도 사회정의에 입각한 복지사회도 이룩할 길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노사간에 대립이아니라 상호협조 속에 경제성장부터 이룩해보자는데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경제발전이 된 것이 아니라 하려고 발돋움하는 현 단계에서는 우선 분배보다 생산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전후 먼저 발전한 나라 중에 생산보다 분배에 관심을 둔 영국에 비해 생산부터 먼저 주력한 독일이 훨씬 더 빨리 경제발전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까지 노동자들이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어떻게 분배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보증되지 않는 한 이것은 엄청난 속임수가 될 수 있을 뿐아니라 경제발전자체를 해낼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로대중의 경제건설에 대한 의욕적인 참여가 없이는 경제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를 예를들면 1945년 패전으로 완전히 폐허된 것을 재건할 때, 선 건설 후 분배의 원칙에 노동자들은 동의하고 의욕적으로 이 건설에 참여했다. 그들에게는 몇해만 기다리면 경제 건설의 열매는 결국 자기들의 것이 된다는 보장이 있었다. 그리하여 독일은 전후 불과 6년인 1951년과 다음해인 1952년에 두개의 아주 훌륭한 노동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것은 공동결정체를 중심한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보장한 법과 또 노동협의회법으로 노사협력의 완전한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이것은 결코 독일의 정치가들이나 기업주들이 노동자를 그만큼 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벌써 선 건설 후 분배를 이야기할 때 오래지 않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든 것이다. 그것의 하나가 노동조합의 정비와 단결이다. 위에서 말한 법도 약속대로 통과를 시키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총 파업으로 들어갈 태세를 갖춤으로써 통과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산업평화는 오직 평등을 토대로 하여서만 형성된다. 힘의 균형이 없는 곳에서 말하는 평화란 강한 자들과 그들을 간접으로 돕는 자들의 괴변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예레미아가 말한 거짓 평화이다. 거짓 평화는 전쟁 보다 더욱 나쁜 것이다.
우리나라는 5·16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기획원, 한국은행 등의 자료를 분석한 노동청의 보고를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여 소개하면 1960년도의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을 100으로 보아 1967년은 103·8로써 근로층의 생활은 조금도 향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놀라운 경제성장을 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명백한 불균형정책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의 분배가 보장되려면 보다 더 좋은 법의 보장과 함께 이미 제정된 노동법이나마 충실히 실행되어야하고 또 노동조합을 육성해주고 노사협력의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안되어지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기업은 개인의 기업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국시로 삼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하려면 우선 근로자들의 의견이 노동조합의 정책을 만들고 노동조합은 이것을 토대로 하여 경영자 측의 집단적인 흥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거꾸로 되어지는 현상이다. 경영주 측이 일방적인 결정을 명령식으로 하달하고 그것이 문제가 생기면 노조의 간부들과 절충만하면 되는 식의 처리방식은 완전히 반민주 적인 독재형식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피가 흘러나가기만하고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은 무서운 병이므로 근로자를 옛날 농경사회의 머슴군 취급하던 시대를 역행하는 반사회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풍토를 하루속히 개혁하는 것이 근로대중에 대한 당연한 인간 대우일 뿐 아니라 이 국가 전체의 발전과 반공 민주 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어두운 현실에서 부질없는 실망을 해서는 안된다. 외국의 모든 전문가들이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문맹이 거의 없는 교육받은 근로대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다만 교육을 받은 이러한 근로대중이 자각을 못하고 단결도 못하고 올바른 조직에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오늘의 문제가 있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 측과 기업주 경영자 측에 해야 할 말이 많다. 또한 이것은 노동자들 자신 편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듣는 바에 의하면 노동조합의 형성이 제대로 안된 것이 많고 형성되어진 곳에도 노동자들이 가입을 잘하지 않고 가입했댔자 회비도 제대로 안내는 조합원이 많다는 것이고 오늘날 노조가 노동대중의 지지와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할 수 있는 유능하고 건실한 조직체가 되지못한데 그 원인이 있음을 기사에서 흔히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미력이나마 이러한 근로대중이 자각하고 그들의 살길과 국가발전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게 하도록 돕고자하며 나아가서 노동조합의 체질개선과 건실한 발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면적인 성원을 하려고 한다. 우리는 과거나 현재의 상황에 집착만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장 건실한 국가 발전과 산업사회의 평화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하여 행정부 입법부 노조 경영주 문화기관 종교 모든 사명단체가 협력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 보자고 호소하는 바이다.
강원용(크리스챤 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