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24) 갈림길 ⑧
발행일1969-06-08 [제672호, 4면]
『누가 찾아와?』
현주는 이경우 아무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고요히 마음의 눈을 안으로 돌린대로 내면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안에 있는 것을 아는데 찾아온 사람을 따돌려 보낼 수는 없었다.
『누구세요?』
가볍게 뇌이면서 나가보니 최호진군이 서있었다.
『어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까지 찾아오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미안합니다』
최호진군은 겸연쩍은 얼굴로 한참 섰던 자리에 서있었다. 현주는 곧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 겸연쩍어 하는 최호진의 태도가 퍽 자연스럽고 순진해 보였다.
『들어오세요』
『미안합니다』
최군은 또 한마디 같은 말을 하면서 천천히 구두를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앉으세요』
현주는 자리를 권했다. 최군은 비굴하리만큼 저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집을 알았어요?』
갑자기 현주의 입에서 나간 말이 이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최횐이 역시 겸연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치않은 일인지 몰라도 현주는 집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찾아왔다는 사실이 공연히 머리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혜경이 가르쳐줬어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지요』
그러는데 어머니가 방에 들어왔다. 딸이 외국에 가는 것보다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결혼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였다. 그랬는데 외모도 단정하고 풍기는게 부드럽고 겸손한 청년이 딸을 찾아왔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런 청년과 사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어머니는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첫눈에 드는 사위감이라고 할까? 방에 들어온 것은 그 청년을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현주는 모친이 방에 들어오자, 최호진은 일어나
『어머님이십니까?』
현주를 먼저 보고 그리고 현주 모친을 보면서 말했다.
『예.』
현주의 대답을 듣고 최군은 현주 모친에게
『아까는 밖에서 변변히 인사도 못드렸읍니다.』
그리고 방바닥에 손을 짚고 공손히 절을 했다.
현주 모친은 그게 또 마음에 들었다.
절을 넙적하게 받고나서 흐뭇한 마음으로 현주 모친은 물었다.
『부모님은 계시고?』
『몇남매의 몇째지?』
어머니의 꼬치꼬치 캐붇는 말을 현주는
『그만하세요.』 하고 제지해 버렸다.,
그래도 현주 모친은 최호진 군에 대한 호감이 가셔지지 않는듯, 방에서 나가더니 곧 과자 그릇과 끓여놓았던 더운 물에 커피를 타가지고 들어왔다.
『학생 몇살이지오?』
『학생은? 졸업한지가 언제라구…』
현주는 어머니가 주착을 부린다고 생각하면서 못마땅하게 말했다.
『참 학교는 언제 졸업했구, 지금 어디 다니지요?』
현주 모친은 물었다. 최군은 묻는대로 대답했다.
『나이는?』
『스물 여섯입니다.』
『마시면서 천천히 놀다가 저녁을 먹구 가도록하지.』
당장 사위나 된듯이 말했다.
그러나, 최호진은 다음 일요일에 둘이서 남한산성(南漢山城)에 관광버스를 타고 갈 것을 겨우 현주한테서 승낙받고 곧 가버렸다.
현주 모친이 대문밖까지 나가 최호진을 배웅해 주었다.
『야, 그 청년 최 뭐랬지? 좋더구나. 언제부터 알았지?』
딸방에 들어와 최호진에 대한 소감을 털어놓았다.
『언제부터긴요…』
『오래지 않니?』
『혜경이 있지 않아요?』
『그렇지. 그애하고 일가라두 되는거야?』
『아니요』
『그럼?』
『혜경이 신랑될 사람 있지않아요? 얼마전에 약혼한… 그 사람의 대학 동기동창이래요』
『그래애』
하더니 현주 모친은
『그럼 더욱 좋구나.』
더욱 반기는 표정이었다.
『혜경이가 네 친구 아니야? 혜경이 약혼한 청년이 최군하고 친구라면 됐지뭐냐?』
그리고 잠깐 뜸을 들였다가 현주 모친은 딸 앞에 다가 앉으면서
『사실은 나는 너를 네 이모부부를 따라 멀리 서양에 보내구 싶지않구나.
너를 그렇게 멀리 보내놓구 어떻게 내가 외로워서 살자는거냐? 물론 거기 가서 공부를 더하고 오는 것두 좋지마는, 여자가 대학을 하나 나왔으면 그만이지 서양까지 가서 공부할건 뭐냐? 그래서 혼기를 놓치구 할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네가 만약, 최군하구 사괴왔구 마음에 든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겠다… 좀 좋니? 친구가 쌍상이 혼사를 하게되는게… 현주야, 서양에 가지말구 시집가두룩해라…』
울먹이는 것 같은 어조로 변했다.
현주는 어머니가 최호진과 자신과의 사이를 지레짐직하고 하는 말이 당치도 않다고 여기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집은?』
현주는 생긋이 웃어보이고 나서
『생각해 보지요.』
이렇게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