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와 세인(世人)들과 또 바로 여러분들의 관심은 교황과 주교단 그리고 주교들 상호간의 관계를 검토하기 위해 모였던 「로마」의 주교 「시노드」에 쏠리고 있습니다.
좀 새로운 표현이기는 하나 실제적이고 윤리적인 이유에서 특정국 혹은 특정지역 주교단의 교계조직(敎階組織)이 검토의 초점이 되었읍니다.
이는 교황청의 권한을 지방분권으로 하여 교회권한이 지역중심이 되게 하려는데 있읍니다. 이는 또한 공번된 교회의 합법적 다양성의 반영이며 교회일치의 전조(前兆)이므로 중요하고도 복잡한 과제입니다. 지난달 일반접견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시노드」의 토의가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 공식 언급은 피한 것이나 현 교회생활에서의 이 문제의 중요성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호소에 응하며 마땅히 바쳐야 할 교회에의 충성을 다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반석위에 세우신 교회를 신뢰해야 합니다. 교회역사에서 베드로의 배가 폭풍에 흔들렸듯이 교회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와 충실에 차있는 교회자체를 신뢰합시다.
교회는 생명력을 입증합니다.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특은이 교회 내에서 명백히 해주고 증거해 줍니다.
교회는 교리·윤리·근본적인 법령·역사적 발전에 철저하게 충실함으로써 「확실성」도 입증합니다. 더우기 교회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개혁하고 쇄신하고 정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로해주고 안심시켜줍니다.
굳건하면서도 동적인 교회는 「현실성」을 입증해 줍니다. 교회가 이 시대에 존재함으로써 시대의 징조를 해석하는데 진보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에, 현대인의 언어를 말하는 데에, 인류의 여러 가지 필요에 응하는 데에 언제나 깨어서 지대한 관심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믿고 바라며 사랑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존재하므로 생활한 것이며 참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과거보다 오늘날 더욱 우리의 신뢰를 받을만 만합니다. 「시노드」역시 이것을 증명해주고 우리의 신뢰를 강화해 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어느 한 구석에서 나타나는 위기라는 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신뢰의 부족탓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현대화」라는 마력 때문에 과도하게 빗나간 사람도 있습니다. 성급한 변화는 自害를 초래하고 신자로서의 투쟁심과 가톨릭 사도로서의 의식을 잃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의 파괴적인 사상과 폐적인 윤리보다도 개정해야 할 것은 교회의 구조라고들 말합니다. 그 결과 교회를 유기적이고 책임있는 단체로 만들어주는 조직과 사랑과 운명의 조직이 도처에서 상당히 풀어져 버렸읍니다.
우리는 상호신뢰가 필요합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묻습니다. 교회는 우리시대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포부와 불안과 기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한 것에 귀를 기울여 줄까? 라고.
교회는 그렇게 할 것이며 또 오늘날 요구되는 대화의 방법도 알고 도와 줄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미 사실과 계획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읍니다.
이것이 교회의 바램입니다만 이 문제를 주의해서 생각해 봅시다.
교회개혁을 위한 자기네들의 특수한 계획이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가지는 좌절감은 정당화될 수 없읍니다. 특히 그 계획이 상식과 일정한 규범을 벗어나 제멋대로 세워진 것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인간은 자기의 이상적인 개혁의 꿈속에서 환상과 연구에 의해 규칙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도피하기는 쉽습니다. 인간은 꿈에서 구체적인 가설로, 가설에서 필요로, 필요에서 때로는 환상이나 반항 그리고 불순명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교회는 자유로운 인간의 공동체이지만 즐겁게 자발적으로 매달려 조그만 슬픔에 이르기까지 재조화속에 살고 있읍니다. 오늘날 교회는(예를 들면 질문을 통해) 공동체의 심리학적 사회학적 자료를 참작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신학적 자료의 원칙, 다시 말하면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사목적 사명의 바탕이 돼야하는 복음의 법칙에 입각한 것이라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에의 험난한 길로 이끌어주고 가르쳐주고 교양시켜주는 사명입니다. 교회는 각자가 원하는 대로 치장할 수 있는 어떤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영신적이고 종교적인 현실입니다. 신앙이 그것을 형성하고 권위가 그 방향을 지시하며 정신이 그것에 활기를 부여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신뢰와 충성과 봉사와 사랑을 받을 만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보잘 것 없는 후계자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