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⑯ 聖祖史記(성조사기) ⑥ 아브라함과 이사악
自由(자유)의 아들 契約(계약)의 아들 그 意味(의미)는?
原則(원칙)은 一夫一妻制(일부일처제)
발행일1969-06-15 [제673호, 2면]
바빌로니아의 가족제도는 원칙적으로 一夫一妻制에 의거하고 있었으나 家門의 핵심은 아들, 즉 代를 이을 後嗣였다. 그래서 결혼한 여자가 石女로서 아들을 못낳을때에는 남편으로 하여금 여종을 妾으로 삼게 하였다. 이 여종이 아들을 낳아 애어머니가 되면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本妻와 동등한 지위도 누릴 수 없었으니, 만약 여종이 그런 과분한 욕심을 부릴 양이면 그녀의 출신성분을 상기시켰다. 이러한 내용이 함무라비法典 제146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1902년 페르샤 高原의 邊境 「수사」에서 全文 282개조의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높이 2.25m의 돌비가 발굴되었다. 현재 「빠리」의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古代 近東地方의 이러한 결혼 풍속을 알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훨씬 수월하게 이해된다.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돌계집이어서 자기 여종 학가르를 남편의 소실로 삼아주었다. 이 하가르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이슈말엘」이라 햇다. 후에 셋째 聖祖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도 자기들의 여종들을 남편의 첩으로 삼아주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낳게한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띠아」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율법의 종교(구약)와 은총의 종교(신약)를 대립시켜 그의 혁명적 義化論을 전개하는데 아브라함과 「이사악」 및 「이슈망엘」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독특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엇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있는 여인에게서 났읍니다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인간적인 육정을 따라 났고, 자유있는 여인에게서 난 아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따라 났읍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그 여인들은 두 계약을 가리킨 것입니다.』 (갈라 4·22~24)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것은 그가 세 사람의 신비로운 방문객들을 맞아 융숭한 대접을 하였을 때이다. 이 이야기와 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후 거기서 타락했던 「로트」의 자손인 「모압」 및 「암몬」족의 기원 이야기는 너무 대조적이다. (창세 18장 19장) 이것은 야휘스트(J)의 傳承이다. 그다음 야휘스트는 이야기를 「베르사베」로 옮긴다(창세 21·33 참조 20장은 E史料이고 P史料이다.) 즉 여기서부터 둘째 聖祖 「이사악」의 傳說圈이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악 이야기」는 「베르사베」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야휘스트는 아브라함의 傳說圈과 「이사악」의 傳說圈을 연결함으로써 「헤브론」의 「엘로힘」 숭배와 「베르사베」 및 「네겝」의 「엘를람」(ELOLAM=「옛날부터 공경받아온 하느님」이라는 뜻) 숭배의 不可分의 一致性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聖祖史記는 俗世的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엉성하고 너무 圖式的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견지에서는 「다위」왕국 곧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의 起源史로서의 통일된 충만한 의미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겨주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모든 氏族傳承을 하나의 다발로 묶은 것이다. 즉 전형적인 네 世代(아브라함 · 이사악 · 야곱과 그 아들들)를 主軸으로 신비로이 類例없는 家系를 형성케 함으로써 選民의 起源을 集約的으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그 당시의 특수한 요약적 敍述法이 사용되었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사건을 어떤 俗史的 발전의 요소로서 보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삭건으로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사악이 났을때 아브라함은 백살이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상징적 나이이다. 창세기 11장 10절 이하의 족보에 의하면 「노에」 의 아들 「셈」이 백세 때 「아르빡샤드」를 낳았고, 그 후의 世代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所生을 보았으며 아브라함에게 와서 다시 100이라는 나이에 귀한 아들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셈」이 받은 축복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러 비로소 실현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려는 것이 아닐까?
세 聖祖의 연령을 분석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 175세=7x5x5. 이사악 180세=5x6x6. 야곱 147세=3x7x7. 첫 숫자들은 한세대씩 내려옴에 따라 둘씩 줄어들고(7→5→3) 둘째와 셋째에서는 반대로 하나씩 불어나간다(5→6→7) 그리고 각각 세 숫자를 곱하기 대신 더하기를 해보면 모두 17이라는 수가 나온다. (7+5+5=17. 5+6+6=17. 3+7+7=17) 17은 10+7이다. 헤브레아 사람들의 숫자 관념에 의하면 보통 10은 역사의 한 주기를 표시하고 7은 성스러운 것이나 완전한 것을 의미한다. 17이라는 수는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10세대중 제일 長壽한 것으로 되어있는 8代 「머투셀락흐」의 나이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187(=17x11)세 때 「레멕」을 낳고 782(=17x46)년을 더 살다가 969(17x57)세때 죽었다고 했다.
그러면 「머투셀락흐」는 계산상으로 대홍수가 난 해에 죽은 셈이 된다. 그런데 대홍수는 「노에」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여기에도 17이라는 수가 나온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다. 성경저자들은 이러한 상징수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주질서를 유지할뿐 아니라 인간역사의 질서까지 조리정연하게 주재하시고 지혜롭게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