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송국에 재치문답이란 교양프로그램이 있다. 만약 그 방송시간에 「거리가 먼것」에 대한 예를 들라는 문제가 나오면 사돈의 팔촌이니 아버지와 꽈백이니 상식적인 대답들을 하겠지만 나는 거침없이 「여성과 독서」라고 대답하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혼여성은 그래도 독서에 관심이 있는상 싶으나 기혼여성은 의례 책하고는 인연을 끊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한국여성의 경우에는 그런것 같다. 생활이 불편하고 시간이 없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씨나리오 작가의 누님은 군불을 때서 밥을 지으면서도 책을 보았다고 하니 역시 여성들이 대체적으로 결혼하면 게을러진다고 보아야 하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단 결혼한 후에는 독서같은 고상하고 힘든 작업은 안해도 될것 같아 보인다. 차라리 낮잠이 여러모로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부지런해지면 된다. 독서는 습관들이기에 달렸다. 하나의 일과로 생각하고 조금씩이라도 매일 읽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정말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잡지라도 틈틈이 읽어야 할 것이다. 여성상위시대를 부르짖기 이전에 여성 독서시대를 누려야한다.
가장 수월한 방법으로는 옛날 소녀 때에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을 들추어 다시 한권씩 읽어보는 일이다. 도스토예브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은 아무리 읽어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 어떤 유명한 작가는 매해 여름휴가에 도스토예브스키의 작품들을 되풀이해서 읽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낸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는 전해에 읽을 때 좋다고 느껴서 밑줄쳐 놓은 부분과 다음해에 다시 읽었을 때 밑줄친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또 독서할 때 작품 안에 나타난 여인상에 관해서 연구를 해도 재미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육십대의 할머니가 세계명작 중 찰스 디킨즈의 「二都悲話」를 읽고 있는데 손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니까 대단히 노하여서 방문을 열고 호령을 하더란다. 『시끄럽다. 할머니가 독서하시는데 왜들 이렇게 소란스러우냐. 지금 불란서엔 혁명이 일어나고 있어』
그러나 난 천하의 여성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남편이 저녁때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저녁상을 가지고 들어가 남편 앞에 놓고 앉아서 애교있는 말 한마디만 던지라. 『여보. 요즈음 「죄와 벌」을 다시 읽고 있는데 참 새로운 것을 많이 발견해요. 실존주의가 그 작품에서 비롯했더군요』 남편은 애정에 가득찬 눈초리를 길게 던져줄 것이다.
오혜령(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