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的(현대적) 死神論(사신론)과 對決(대결)하는 敎會(교회)의 神(신)의 證人(증인)들 ㊤
「神(신)의 죽음」說(설) 最大(최대)의 瀆聖(독성)
宗敎的(종교적) 無關心(무관심)이 더 큰 危險(위험)
敎會(교회) 通(통)해 人間(인간)은 神(신)을 認識(인식)
現代(현대) 無神論(무신론)은 人間絶對化(인간절대화)로 無政府狀態(무정부상태) 초래
다음은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성 베드로」대성당에 모인 많은 군중들에게 하신 연설문이다. 교황께서는 「신의 죽음」이라는 斷言의 주관적 개관적 양상을 생각하고 우리 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살리고 증가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본문중 「여기」 「이곳」은 「로마」의 「성 베드로」대성당을 가리킨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겠읍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와계신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대단히 특수한 세계에 와 계십니다.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여러분들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환경이나 인간적이고 겸손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특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성뿐만 아니라 참되고 생생하고 구령하는 유일한 관계 즉 신과의 관계의 현실이 이곳에서 확인되는 사실의 예외적이고 희귀한 성질 때문에 특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또 근거가 있는 것으로 굳게 지키는 종교는 이곳에서 그 중심적이고 사회적이며 진정한 표현을 찾게됩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신앙은 가장 꽉차고 충실한 확증을 찾게됩니다. 이곳에서 인간은 신을 알게되고 신은 이곳에서 사랑을 받습니다. 신은 이곳에 현존하십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심장이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
오! 우리는 그분의 현존이 이곳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현존이 인간이나 사물의 덕으로 완벽하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교회에 속하는 역사적, 합법적, 구체적, 인간적 또한 신비적, 초자연적 이유를 믿는 이들에겐 경이와 환희의 감정이 일어나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한 이유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대단히 定義내리기 어렵고 쉽사리 경멸되고 낯설고 경솔한 현상으로 비치면서도 언제나 인상적입니다.
잠시동안 한가지 단순한 문제에 정신을 집중시킵시다.
여기는 천주 거처하시는 집입니다. 문득 「창세기」의 말슴이 떠오릅니다. 『이 자리가 이 얼마나 무서운고. 여기가 「천주의 당(堂)」과 다른바 아니로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다!』(창세기 28장 17절)
다시 말하면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바깥 세속 특히 괘도를 벗어나고 혼란한 지역에서 죽었다고 하는 「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神과 죽음」이라는 말보다 더 심하고 독성적인 背馳는 없읍니다.
객관적인 의미로 생각해 보면 「존재와 不在」 「生命과 無」 「절대와 不合理」 「필요와 不必要」 「진리와 허위」 「행복과 절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不幸한 「슬로건」이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는 神의 이름에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줄 모르는 인간의 思考 즉 주관적인 의미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신은 인간의 두뇌속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꺼진 것은 太陽이 아니고 인간의 눈이 구름으로 가려 太陽을 못보는 것입니다.
종교적 무관심이 유행하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화를, 事物의 認識에서 「神」이라는 더 높고 초월적인 原理에 힘입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分離된 自律을 가진 思考의 過程으로 받아들입니다.
形而上學은 끝났다고 말합니다. 無神論은 科學을 利用하여 解放者로 勝利者로 自處합니다. 그리고 神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더우기 無用하고 진실로 害로운 것이라고 합니다.
現代人은 이제 神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이며 神의 이름을 소홀이 하고 無視하고 否定함으로써 자기자신의 生活과 社會生活을 더 잘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명한 신학자가 말하기를 현대 無神論은 그것이 실질적으로 集産主義나 無政府狀態를 向해서 기울어지거나 人間이나 自然에 絶對를 부여하거나 모든 絶對를 거부하거나 문제의 깊은 의미를 나타내는 規則으로 삼거나 事情에 따라서 凱旋的이거나 절망적이거나 평온무사하거나 解釋學으로, 最後의 說明으로 自處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 모두가 숨쉬는 공기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곳에서 더 특징적이고 대표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과거와 같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는 죽지 않았으며 교회는 두려워하지 안고 계속되어 기꺼이 그 증거가 되기를 주저치 않고 그리스도가 生活한 천주의 아들임을 베드로와 함께 선언하고 복된 확신으로 천주의 영광을 찬미하기를 주저치 않는데에서 여러분들이 당하는 「파라독스」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