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年(년)의 발자취] 本堂(본당)·敎會機關(교회기관) 어제와 오늘 ① 明洞主敎座本堂(명동주교좌본당)
6年間(년간)의 難工事(난공사) 韓國最古(한국최고) 벽돌집
이젠 信者(신자) 萬餘名(만여명) · 天主敎(천주교) 總本山(총본산)
발행일1969-06-22 [제674호, 3면]
1777년 서학에 관심을 가진 이익(李익)과 그 제자들이 한강가 주어사(走魚寺)에서 학술토론을 하고 천주교 교리를 궁구하였고, 1784년에는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 가서 교리를 배워 영세입교한지 어언 1백85년. 그러나 원시신앙의 오랜 인습과 사색당쟁은 신학문이나 선교활동이 용납되지 못했으니 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교난 등 대 · 소규모의 온갖 박해와 참사로 점철된 피의 역사가 1백여년간 계속되었다. 그후 구미각국과 통상조약이 체결되고 1886년 한불우호조약이 맺어지면서 신교자유도 허용되었다. 본란을 통해 한국천주교회가 걸어온 70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그간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현재는 어떠하고 앞으로 어떤 역사를 남길 것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1886년 한불우호조약 이후 선교활동의 자유를 얻게되자 당시 제7대 조선교구장이던 블랑 백 주교는 교우수 1만8천명에 신학생 20명의 교회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하였다. 그후 10여년동안 용산신학교, 명동주교관 약현성당, 명동성당이 차례로 완공되었는데 1892년에 착송하여 6년간의 난공사를 거쳐 1898년 6월 29일에 준공된 명동대성당은 그 높은 종탑과 더불어 박해로부터의 승리를 상징하는 한국천주교회의 걸작이며 우리나라 건축사상 벽돌집으로 최고(最古)의 건물인 것이다.
따라서 명동본당의 역사는 실제로 성당이 축성된 1898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제 만71세를 맞는 셈이다.
이보다 5년 앞서 축성된 약현성당과 더불어 서울의 4대문 안밖을 나누어 명동본당은 문안을 약현본당은 문밖을 관할구역으로 하여 두 본당이 쌍벽을 이루며 그후 오늘까지 주교좌성당으로, 지역단위본당으로, 명동성당은 이나라 천주교의 역사를 지닌채 살아온 것이다.
지금은 신자수 9천8백, 세대수 3천으로 서울의 중심지대인 중구 일대와 태평로, 충무로가 본당구역이고 현 주임신부인 이 요한(문근) 부주교는 10대가 된다. 초대 주임신부인 박위돌(佛人) 신부는 27년간 주임신부를 지내다 선종하였고 2대 우일모(VILLEMOT · 불인) 신부는 6·25사변에 공산군에 납치되어 옥사하였다.
2대 이후 오늘까지 명동성당은 한국신부들의 손에 커왔고 현재 본당운영체제는 평신자들로 구성된 자치회와 보좌신부 3명을 포함한 4명의 신부 공동작업으로 완전히 자립된 운영을 하고 있다.
신자들의 영신 및 활동단체로는 청년들의 모임인 「성삼회」 「레지오 마리에」 7개 「쁘레시디움」과 봉사활동을 주로한 부인회, 빈첸시오회 등이 있고 7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그 명성과 함께 역사가 깊다.
이중 성삼회 운영은 지도 김 루도비꼬(수길) 신부를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봉사활동으로 좋은 성과를 보고있고, 성가대는 최초로 성가만을 수록한 「레코드」 취입을 끝내고 곧 출반할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전교활동은 평신자 단체의 활동외에 매주3시간씩 2개월간 계속되는 미신자를 위한 교리학교를 통하여 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매년 6백명 정도 영세입교하고 있다.
이외에 어린이를 위한 주일학교가 18학급으로 학생수 5백명 교사 20명인데 매년 30여만원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1만여명의 신자를 거느리는 본당인 만큼 운영 예산 또한 적지않아 월2백만원정도, 세대당 교무금 액수는 50월에서 3천원까지 다양하며 매주 미사도 오전6시부터 오후7시까지 11대가 거행된다.
그런데 참예하는 신자는 상당수가 시내 각처로부터 모여든다.
현 주임인 이 요한 부주교는 작년 6월 취임 이후 가난한 본당 돕기 운동을 벌여 기금을 마련중인데 오는 9월까지 기금을 확보하여 주로 서울시내 변두리의 성당없이 지내는 본당들을 대상으로 대지구입이나 성당건축 보조금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면적인 질서의 완전함이나 활동의 다채로움에 비해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가족적인 본당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구역이 넓고 바쁜 도시인들을 안고 있는 중앙 본당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당구역 외의 신자수가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니 1년내내 본당신부를 찾아가 말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하는 신자가 대부분이고 운영 역시 몇몇 관심있는 사람들의 참가로 이루어지고 있어 신자부재의 인상을 받게됨은 섭섭한 일이라 하겠다.
70여년간을 한 모습으로 우뚝서 만인에게 말없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성당의 굳은 자세같이 본당의 알찬 발전을 위해 본당신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이들을 안아들일 수 있는 터전이 아쉽다.
역대 주임신부
1대 · 박위돌(VICTOR, POISNEL) 1888~1925
2대 · 우일모(PAULUS, VILLEMOT)
3대 · 이기준(토마) 1926~1942
1942-1950
4대 · 장금구(크리소스또모) 1950~1957
5대 · 양기섭(베드로) 1957~1962
6대 · 이종순(라우렌시오) 1962~1963
7대 · 신인식(바오로) 1963~1964
8대 · 황민성(베드로) 1964~1965
9대 · 이계중(요안) 1965~1968 6월
10대 · 이문근(요한) 1968 · 6월~현재 (建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