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敎問題硏究院(종교문제연구원), 그 實積(실적)
수십차례 연구회 마련코 對話(대화)의 길 넓혀
聖職者(성직자) 信者(신자)의 認識(인식) 協助(협조) 필요
「宗敎硏究(종교연구)」誌(지) 發行(발행) - 世界(세계)에 한국종교 現況(현황) 소개
한국의 종교계는 과거 역사적 현실 속에서 서로 정중한 무관심만을 지켜왔기 때문에 그것으로 종교인에게 부과된 사명을 다하였는지 바야흐로 모든 종교인들은 심각하게 반성해볼 때가 왔다. 무관심한 이웃이 공동의 과제를 위해 상호 노력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 종교인은 힘을 합쳐 물질과 기계만능주의를 지양하고 혼탁한 도덕기준을 정비함으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땅의 정신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해야할 사명을 갖고있음을 교황 故 요한 23세는 절감하고 교회쇄신과 일치를 위해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소집했다.
그로인해 한국교회(가톨릭)도 쇄신일로에 섰고 가톨릭이 과거 그처럼 적대시 내지 천시하던 타종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해를 갖게되었는가는 누구나 잘 아는 현실이다.
2백년 역사 속에서 세속과 높은 담을 쌓은 채 이웃을 모르고 타협을 모르던 한국가톨릭이 이처럼 급변한데에는 종교문제연구원의 역할이 컸다고 봐야겠다.
종교문제연구원은 타종교에 대한 연구조사와 타종파와의 대화를 목적으로 67년 12월 설립, 그이듬해 5월 27일 한국주교회의 산하에 있는 일치위원회의 실행기관으로 정식 발족했다. 교회일치운동 및 제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화의 문제를 연구하는 순수학술기관인 종교문제연구원은 발족한지 1년6개월동안 67년 1월 5일 YMCA 강당에서 신학자 및 학자와 교계지도자들을 위한 「교회일치문제세미나」를 비롯해 「학생운동에 관한 심포지움」 「바티깐공의회신학강좌」(68년 2월 20일~22일) 「각교파교리공청회」(68년 1월 5일) 등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일치 그리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수십차례의 모임을 마련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처럼 철통같은 가톨릭의 높은 담은 얕아지기 시작, 2백년의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基長 목사인 강원용씨가 명동성당에서 설교를 했고(68년 1월 18일) 가톨릭 박양운 신부도 종교 감리교회에서 강론(68년 1월 24일)을 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는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같은 자리에 모여 기도하기를 서슴치 않게 되었다.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관계뿐만은 아니다. 불교 · 천도교 · 유교 지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69년 1월 5일) 교황청에서 제정한 「평화의 날」을 맞아 종교인 모두가 종파를 초월 일치단합하여 한국과 전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이것은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상상도 못했던 사실임이 틀림없다.
동연구원은 개신교나 타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가톨릭의 유일한 연구기관으로서 종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면에서도 크게 활약하고 있다.
동연구원에서 발간되는 「종교연구」의 제2집으로 한국종교의 전반적인 현상황이 영문으로 수록, 오는 8월이면 전세계 학계와 종교계에 소개된다.
또한 문공부에서 실시하는 신흥종교 조사가 동연구원에서 기안한 조사방법으로 실시하게 되는 한편 서울시내 조사는 동연구원에서 맡아하게 되었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브리타니칼」 백과사전 70년도 개정판에 소개되는 한국종교도 동연구원에서 맡아하고 있다.
종로구 명륜동2가 1백93의 6에 위치하고 있는 동연구원엔 원장 박양운(일치위원회 총무) 신부 · 부원장 조광원(성공회) 신부 외 3명의 직원이 있고 연운회비로는 대략 3백만원이 든다고 하며 주교회에서 연14만원씩 나오고 있다.그리고 올해 처름으로 교황청으로부터 8천불의 보조를 받았다.
앞으로 동연구원의 활동은 ①교회일치위원회 ②비그리스도교와의 대화를 위한 위원회 ③일반 신흥종교와의 문제를 위한 위원회 등 3개 위원회를 구성하고 보다 폭넓게 연구할 계획을 밝히는 박 신부는 그동안 일하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작년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베아 추기경 추도미사때 성직자는 물론 일반신자들이 많이 참석치 않았던 일이라면서 『교회일치운동에 비협조적인 사제들 수가 하루속히 줄어들고 이에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되기 바란다』고 했다.
한편 박 신부는 『남을 안다는 것은 가지 일부를 아는 것이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에 들어온지 90년 밖에 안되는 개신교가 현재 2백만의 신도를 갖고 2백년 역사를 가진 가톨릭보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미친 이유는 먼저 들어온 가톨릭이 타종교를 무시하고 유아독존적으로 타협(?)을 몰랐던 탓으로 성혈이 쏟아진 이땅에서도 겨우 70만 신도를 가졌을뿐 발전을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유교와 불교를 몰랐던들 가톨릭에 접할 수 있었겠느냐』고 덧붙이며 교회일치를 먼 안목으로 바라보고 보다 적극적인 운동을 다집하고 있다. (吳玉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