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45) 분수령 ⑪
발행일1969-11-23 [제694호, 4면]
용신이와 현주는 서로 정진하는 일에 격려자가 되고 응원자가 되고 있는 셈이었다.
용신이의 바요린 실력이 날로 진경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현주의 건축설계도 진척되어 갔다.
무엇보다 현주가 쾌적한 기분이었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작품에 전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했다.
(용신이 때문이야…)
용신이를 생각하면 꺾이려던 용기가 되살아났다. 용신이의 바요린의 멜로디를 들으면 새롭고 청신한 구상이 구름일듯 일어났다.
M대학 민속박물관 설계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제 거의 붓을 떼게 될 무렵이었다.
『선생님.』
용신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꽃다발을 내밀었다.
『어머, 꽃다발…』
현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연한 성격인 용신이는, 그렇게 현주로부터 어린애처럼 온갖 선물을 받았으면서도 한번도 현주를 위해, 쵸꼬렛 한개 사다준 일이 없었다. 그런 용신이 심심한 향기를 뿜는 꽃다발을 사가지고 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지?』
『소원성취』
『소원성취?』
『나가게 됐어요』
『연주회에?』
『C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용신이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감정이 풍부한 청년임을 대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꽃다발이었군』
현주는 용신이의 풍부한 감정에 휘말려 들어가 저도 모르게 가슴을 두근 거리면서
『축하해. 용신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모두 선생님 덕이예요』
용신이는 그래도 인사치례를 잊지 않았다.
『내덕?』
『그래요』
『C 선생 덕이겠지』
『C 선생도 고마우나』
용신이의 출연결정이 현주를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설계의 나머지 부분이 등 뒤에서 누가 믿어주는 듯이 진척돼나갔다.
용신이의 연주회는 현주가 M대학 민속박물관 설계도를 끝낸지 이틀뒤에 열렸다.
국립극장에서 낮·밤 2회의 공연이었다. 토요일이었으므로 낮공연도 거의 만원이었으나 밤에는 초만원을 이루었다.
용신이는 의젓하게 멤버에 끼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맨 앞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은 현주는 용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손하나 움직이는 것 몸 한번 흔드는 것 얼굴의 표정까지 낱낱이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곡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 박수 박수…. 현주도 물론 손바닥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드록 쳤다.
열광 속에 연주는 끝났다. 앙콜곡까지 연주한 뒤에 다섯은 무대 앞에 나와 인사를 했다. 꽃다발 진정의 순서 아닌 순서….
현주는 미리 푸짐한 꽃다발을 마련하고 있었다.
누구 여학생을 시켜 전할수도 있었으나 현주는 자신의 체면도 아무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이 무대에 올라가 직접 용신이에게 전했다. 꽃다발을 받은 용신이는 흥분된 얼굴에 빙긋이 웃음을 띠고 현주가 내미는 손을 잡고 굳은 악수를 했다.
연주회에는 Y 선생은 물론 박훈씨 부부도 함께 나와 있었다. 그들은 무대 뒤에 찾아가 제자이며 아들을 칭찬하고 지도해준 C씨의 노고도 아낌없이 치하했다.
그런 일도 끝난 뒤 연주멤버와 C씨와 그외의 몇사람이 현주도 끼어 간단하게 가까운 음식점에서 식사겸 간담을 나누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용신이는 시종, 흥분을 가라앉히느라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주는 용신이의 옆에 앉아 마치 어머니처럼 『이걸 먹어요…』 『이제 긴장을 풀어야지!』하면서 용신이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식사가 끝난 뒤 둘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성공이야.』
『그래요?』
『내 옆에 음악평론가 K씨가 앉아 있었거든…』
『뭐라구해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앙상블이라고…』
『피이 무어…』
『보렴? 이제 평이 날걸…』
차에서 내려서 였다. 현주는 제가준 꽃다발을 한손으로 가슴에 안고 과(科)의 친구들이준 화분을 한손으로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용신이 바요린케이스와 현주의 핸드백을 가지고 들어오고…
방에 들어서서였다.
현주는 꽃다발과 화분을 적당한 자리에 놓고 윗도리를 벗고는 용신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용신이는 아직도 감격이 가라앉지 않는듯 흥분하고 있는듯 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현주는 불안은 전연없고 흐뭇함과 감격뿐이었다.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현주는 자신을 가누어잡을 수 없었다.
『용신이…』
저도 모르게 부르는 동시에 용신이를 덥썩 껴안았다. 용신이의 뺨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 입술은 어느결에 용신이의 입술에 포개지고 말았다.
용신이도 반사적으로 현주의 포옹에 응해 현주를 포용했다.
『선생님 선생님.』
물러서면서 현주는 「이게 무슨 짓이냐? 앗질 했다. 이런 이런….
그러나 가슴속을 꽉 메우고 있던 감격이 방출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증얼거렸다.
(불순한 동기에서가 아니다. 감격이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데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