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번 미사에서 변경된 부분은 미사경문과 미사예절이다. 그런데 미사경문은 아직 미사경본이 준비가 다 못되어서 일단 연기하기로 하고 미사예절만은 우선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였다. 미사경문이 늘 달라지는 반면에 미사책이 없어도 따라갈 수 있는 늘 같은 부분을 「통상문」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부터 바뀌는 예절부분이다.
이 「통상부분」에서 입당식과 봉헌식과 성찬식이 주로 변경된 점인데 입당식에 관해서는 이미 해설했으므로 오늘은 남은 두 부분을 마저 설명하고자 한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크게 양분되고 「성찬의 전례」는 「봉헌식」과 「성찬의 기도」와 「성찬식」으로 세분된다. 「성찬의 전례」의 첫째 부분이 되는 봉헌식은 본시 미사의 핵심이되는 성찬과 제사를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
비록 봉헌식이 준비과정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보아서는 제물의 봉헌을 통한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자신의 봉헌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미구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게 될 빵과 술을 실지로 제물로 바쳤고, 또한 자기네들이 바친 제물 중에서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받아먹었을 뿐만아니라 제물의 나머지는 교회와 가난한 이들의 생활에 충당되었기 때문에 명실공히 봉헌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때가 흐름에 따라 제물은 점차 다른 현물로 바꾸이고 드디어는 금전으로 대체되었다. 헌금은 교회 및 성직자생활에는 퍽 편리하고 도움이 되었으나 그 반면에 전례상으로는 큰 폐단을 초래했다. 왜냐하면 감히 단위에까지 놓일 수 없는 헌금의 행위는 결국 전례 밖의 행위로 저하되었으며, 또한 사제는 제단에서 혼자 제물준비에 바쁘고 한편 신자들은 헌금에 여념이 없고 보니 초대교회에서와 같은 바치며 받고 하던 사제와 신자간의 일치는 자연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본연의 봉헌정신을 복구시키려고 한 것이 금번개혁의 요점인 듯하다. 그러므로 사제는 신자들로부터 전례상의 제물인 빵과 포도주를 받아 제단위에 놓게 되어있으나 이 제물은 영적의미밖에 지니지 못하므로 신자들은 생활상의 제물인 금전 및 기타 예물로 어떠한 모양으로든 자기 자신의 봉헌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물이 준비되면 곧 빵과 포도주의 봉헌이 거행된다. 이것은 이전과 달리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으나 의무적은 아니므로 종전과 같이 신자들은 봉헌 동안 다른 봉헌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봉헌기도로써 봉헌식이 끝나고 이제부터 미사성제의 중심이요, 그 절정인 「성찬기도」가 시작된다. 이 기도는 감사송 환호(거룩하시라) 축성을 청하는 기도, 성체성사설정의 이야기, 빠스카 신비의 상기, 제물의 봉헌, 전구, 영광송 등으로 구성된다. 작년 5월 전까지도 「성찬기도」로서는 소위 「까논」(미사전문)이라고 불리는 단 하나의 양식밖에 없었으나 또 다른 세가지 양식이 발표되게 됨으로써 모국어에의 한 미사집전에 이어 미사의 최대개혁이 단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금번 새 미사에 있어서 성찬기도는 전혀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종래의 제1양식에 약간의 수정을 함으로 다른 세양식과 접근과 조화를 꾀했을 뿐이다.
「주의 기도」로써 시작되는 성찬식은 평화의 인사 교환, 빵의 나눔, 영성체, 이렇게 세부분으로 되어있다. 먼저 「평화의 인사」에서 지금까지 순서가 뒤바뀌었던 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즉 종전의 미사에서는 사제가 평화의 인사로 초대하지만 실제로 인사가 교환되는 것은 빵을 나눈 다음이었으므로 새 미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새 규정을 지었다.
「주의 기도」 및 그 연속인 소위 「삽입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큰소리로 「평화의 기도」를 바치고 그 끝에 신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달한다. 평화의 인사가 끝나면 사제는 성체를 떼어 나누는 예식으로 들어가고 한편 신자들은 「천주의 어린 양」을 노래하거나 왼다. 이 노래는 본시 「성체 나눔」에 관한 노래인 동시에 평화의 노래이다.(평화를 주소로 끝막음하기 때문)
그리스도는 최후만찬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줌으로 그의 몸을 쪼개는 곧 그의 죽음을 암시한 것처럼 과연 천주의 어린양이 빠스카 제물로 희생되었다.
또한 빵의 나눔은 한 빵에서(평화와 일치의 근원) 각자에게 생명의 음식을 떼어 나누어주는 배급을 의미한다. 『면병은 하나이므로 우리가 수는 많으나 한 몸을 이룬다. 우리는 다 한 면병에서 나누어 받기 때문이다』(꼬린토 10·17)
최석우 신부(양화진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