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⑱ 聖祖史記(성조사기) ⑧ 이사악의 제헌
完全(완전)한 自我拋棄(자아포기)
徹底(철저)한 敬神思想(경신사상)
발행일1969-06-29 [제675호, 2면]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줄 바 거기있는 한 산위에서 그를 번제로 드려라』(창세기 22장 2절)
아브라함 이야기는 「이사악의 제헌 이야기」에서 절정에 달한다. 여기서 아브라함이라는 典型的 인물의 內的 核이 드러나고 그의 삶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에게 매이게된다.
아브라함의 남김없는 절대적 헌신 모든 인간적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한 완전한 歸依로 말미함아 하느님이 이세상에 개입하여 구원의 役事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즉 성경저자(엘로히스트)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인간편의 희생 意志만이 하느님의 강복 意志에 맞갖을 수 있다는 진리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하느님의 祝福圈에는 모든 민족이 포함되어 있다) 이사악 제헌이야기의 신학적 의미는 이와 같이 명백한 것이지만 몇가지 종교사적 내지 고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 설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대문은 창세기 22장 12절이다. 『너는 그 아이에게 너의 팔을 뻗치지 말라. 또 그에게 아무짓도 하지말라. 네가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너의 외아들인 네 자식조차 나에게 바치기를 아끼지 않았음을 내가 이제는 알았음이니라』 (이 앞의 11절 야훼의 천사 이야기는 J史料이다) 하느님에게 대한 깊은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바치게 하다. 이 敬畏心이 아브라함에게 人命의 제헌도 不辭하는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헤브레아 사람들은 이같은 敬神法을 주위의 異敎部族들에서 발견했을 것이다. 예컨데 「가나안」 사람들이나 「페니키아」 사람들은 몰로크 神에게 아이들을 희생으로 바쳤는데 그들은 이것은 최고의 敬神행위로 여겼음이 틀림없다.
성경저자는 이러한 異敎的 敬神思想을 아브라함에 대한 「시험」(혹은 유혹)으로 形象化하였다. 시험이란 사람을 언제든지 惡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는 부동적 상태에 처하게 한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죽 人命)을 제헌하려고 한 동기를 하느님의 명령으로 전하고 있으나 이것은 아브라함의 內的 갈등이나 思考의 混迷를 하느님의 직접적 요구인것처럼 요약하여 묘사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때 하느님이 그러한 惡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당신 친히 야기시킨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느님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이라고 해석해 버리면 문제는 간단하겠지만 성경저자들의 修辭法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그릇된 양심」도 하느님의 소리로 표현한 대문들이 있다. 예컨데 사무엘 전서 16장 14절에는 『야훼의 신은 사울한테서 물러가고 <나쁜 신이 야훼께로부터> 그에게 덤벼드니라』 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러한 人身제헌의 敬神思考(갈등)를 「시험」으로 허용하셨을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을 잘 묘사한 대문이 「미케아」 예언서에 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야훼앞에 나아가며 지존하신 하느님 앞에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야훼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곧 내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몸의 열매를 드릴까?』 (6 · 6~7)
요컨대 성경저자가 이 說話에서 말하고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결코 이사악의 목숨(人身제헌)이나 또는 얽힌 나무가지에 뿔이 걸렸다가 붙잡혀 이사악 대신에 제헌된 양의 생명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異敎邪神은 으례 제물로서의 어린아이나 짐승, 이를테면 「도살된 이사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신앙을 요구하신다. 제헌하는 사람이 자기자신과 마음을 온전히 봉헌하면서 바치는 제물만을 가상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마음을 온전히 바친다는 것이 제단위의 산제물보다 더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오로지 하느님만 믿고 모든 인간적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더 확고한 약속의 보장을 받게되었다는 것이다. 『네가 이런 일을 하였으매… 너에게 복을 내리어 너의 후손을 마치 하늘의 별과 바다가의 모래같이 수없이 많게 하겠노라』(서창세기 22·15~18참조)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 즉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역사적 존재는 아브라함의 영웅적 자기포기의 決斷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說話에는 人身제헌을 단죄하는 反異敎的 의도와 함께 맏자식의 봉헌에 관한 율법사상도 반영되어있다. 흔히 敎義的인 면에서 자기를 불사를 나무단을 짊어지고 「모리야」산(후에 살로몬 성전의 터가 된 곳이라 전한다)을 오른 이사악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언덕을 오르신 그리스도의 豫型으로 보며 또 「모리야」산상에서 외아들을 제헌하려고한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독생성자를 人類救贖의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聖父의 模像을 類推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그 신앙의 「자기포기」로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