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 한창이다. 돈잘버는 회사에서는 김장값이 나오기도 한다. 집집이 김장담그기에 여념이 없다. 김장만은 대학졸업한 새댁에게는 수월치 않아 마냥 울상이다. 시어머니 맏동서가 때나 만난 듯이 서두를 때 학사(學士) 며느리는 멍하니 바라다보아야 하는가.
이럴줄 알았다면 친정에서 김장담글때 눈여겨보고 메모라도 해두었을 걸… 후회막급이다. 김장을 잘 담근다고 박사호를 타는 것도 아니요. 시어머니 클럽에서 표창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첫째 자존심이 여지없이 구겨진다. 하도 딱해서 곁에서 쉬운일이나마 거들려하면 『너는 방에 들어가 있거라. 감기들라』 시어머님의 따뜻한 인정조차 비꼬는 수작같이 귓전에 역겹기도 하다. 이런 사소한 일로 인하여 새며느리가 기가 죽고 어딘가 어색하게 되면 하나의 문제꺼리가 되기 일쑤이다. 얼른 생각하면 그깟 김장 좀 담글 줄 모른다고 그게 무슨 큰 결함이 될 것이며 그런걸 가지고 며느리의 성적표에 낙제점을 기록한다면 몹시 불쾌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지극히 시시한 사건 같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나아가서는 새출발을 한 새가정 에 한덩이 먹구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때 능숙한 시어머니라면
『며느라 대학에서는 김장담그는 법은 안가르치지… 어서 내곁에서 시중들어가며 배워! 그러면 내년부터는 곧잘 담글거다.』
어찌 시어머니만 너그러우랴. 며느리 역시 결에서 버티고 있지만 말고 꼭 무슨 창피한 일이나 겪는 듯이 부루퉁하지 말고 시어머님 곁에서 눈치껏 거들면서
『어머님 죄송합니다. 학교엘 다니느라고 김장담그는 법을 미처 못배웠읍니다. 금년만 가르쳐 주시면 명년부터는 잘담그겠어요.』
어리광을 피우듯 애원이나 하듯 넌즈시 사정을 하면 어느 시어머니가 그래도 며느리 잘못 골랐다고 군소리를 하랴. 이것은 부부 간에도 일반이다. 신혼 기분이 차차 냉각되고 본격적인 가정문제에 부딛쳤을 때 왕왕 부부간에는 의견의 대립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때 어느 한쪽이 너그럽게 따뜻하게 양보를 하면 요행이건만 때로는 사한문제 이것만 오가는 수작이 잘못 얽히면 오해는 오해를 북돋고 흥분은 감정을 일으켜 애정문제를 다시 따지는 종점에서 맴돌 수도있다.
이것을 가볍게 보면 사랑싸움이지만 남편이 분개하고 아내가 암상을 피우면 일은 커진다. 옛 어른 말씀이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인 것 같다했으니, 곧 다시 화목해진다는 뜻이겠으나 어느 한쪽이 고집이 세거나 성미가 깐깐하면 고질도 된다.
약혼시대에 주고 받은 아름답던 대화를 회상할 때 그때일이 꼭 꿈만같아서 너무나 차가운 현실에 몸서리를 치면 뜻아니한 풍파도 일게 된다.
칼로 물베기가 아니라 도끼로 장작을 패게 되면 큰일이다. 어느 한쪽이 이긴다고 이긴 것만으로 이익이되지 못하는 것이 부부간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부모를 모시고 지낼 때의 새며느리는 누구보다도 남편이 감싸주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진정 그러면서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거나 눈치가 부족해서 아내를 감싸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나이로서 하나의 결함이 된다. 이와 똑같은 의미에서 자기를 감싸주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고 설혹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남편의 타고난 성격이라면 그것을 이해할 만한 지혜를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
그래서 부창(夫唱) 부화(婦和)라는 말이 있는 것이니 부부는 언제나 서로 이해하여 과실에 대하여 관대해야하고 상대편의 결점을 명심하여 그것을 꼬집어 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씨로 감싸주어야 한다. 요사이는 대다수의 부모들이 새며느리는 딴살림을 내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경향이니, 만일에 「아파트」나 단간 살림을 차리고 젊은 둘이서 살게되면 우선은 자유롭고 오붓하다지만 초년생(初年生)들의 신가정에는 만만치 않은 애로가 숱하다.
오붓한 것은 남편과 마주앉았을 때 말이지 아침에 나가 밤에 돌아오는 남편이라면 혼자 기다리는 새댁은 쓸쓸하다. 이 고비를 무던히 참고 곧잘 넘겨야 한다. 아기를 낳고 남편의 월급이 오르고 앞을 내다보고 사는 것이 가장 요긴할 것이다. 요사이 흔해빠진 신문 방송의 신가정의 비극은 모두가 사소한일에서 비롯하여 걷잡지 못할 큰일이 벌어지기가 일쑤이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젊은 부부의 단간 살림에는 허다한 위험이 내포해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현명한 아내라면 자기의 괴로움은 가슴에 서려두고 남편 앞에서는 넘제나 부드럽게 미소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나이란 좀 뻔뻔스러워서 자기의 과실을 관대하게 봐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아내가 어머니같이 너그럽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수도 있다. 이점 젊은 아내에게는 명심해서 해롭지는 않을성 싶다. 남편도 또한 언제나 약혼 때 주고받은 새살림의 설계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요긴하다. 결혼했으니 그만이다. 아내를 밥장수라 부르는 따위의 농담은 농담에 그쳐야지 고질이되면 불행하다. 부부간에는 어느 한쪽이 불행할 때 다른 한편은 의례 따라서 불행한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고 자기의 일이다. 가정문제는 그래서 소홀히는 못한다는가 싶다.
李瑞求(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