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46) 분수령 ⑫
발행일1969-11-30 [제695호, 4면]
현주의 말대로 용신이네 현악합주의 평은 악단에서의 근래에 없는 수확이었다는 것이 대체로 일치된 평이었다. 특히 용신에게 기대와 촉망을 거는 평가도 있었다.
그게 자극과 격려가 되지 않을 수 없어 용신이는 더욱 정진했다. C씨가 앞으로 용신이의 독주회도 마련해줄 뜻을 은연중 비치고 있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용신이 못지않게 현주가 기쁘고 흐뭇했다.
이 심정은 현주자신이 용신이를 음악가로 키우고 있다는 보람에서 오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런 심정속에서 현주는 용신이에 부어지고 있는 애정이, 그저 동생에게나, 그런 관계의 청년에게 향하는 것만이 아님을 스스로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연주회가 끝난뒤, 집에 돌아와서 있었던 포옹의 장면이 마음속에 인상지어준 여운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축하의 극한상태의 표시다!
그날 현주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규정짓는 것으로 합리화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날이 갈수록 현주가 이성에게 할 수 있었던 가장 열렬하고 순수한 상태의 애정표시다. 이런 목소리가 현주의 마음속 밑바닥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축하하는 극단의 표시라고? 거짓말을 마라!)
현주는 감히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정할 수 없었다. 용신이가 열심히 연습을 하거나 느물댈 때 연주회에서 돌아온 뒤와 같은 행동을 취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주는 입술을 깨물면서
(이래서는 안된다)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것은 위기다)
이런 마음은 자신에게 검은 손을 벌리고 달려드는 악마라고 생각됐다.
(용신이를 돌봐준 것, 용신이를 오늘처럼 키워준 건 결코 혼기를 놓친 처녀의 고독감이 시키는 야심이나 어떤 저의로서가 아니다. 만약 그런 것처럼 남에게 오해를 받는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타이르는 것뿐이 아니었다.
(그뿐인가? 용신이의 아버지는 나에게 청혼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 아들에게?)
무슨 큰 죄를 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러니까 용신이에게는 담담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지나친 관심이나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남의 오해뿐이 아니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용신이 자신도 젊은 사람, 제가 정열을 부을 수 있는 이성이 생기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용신이의 마음과 정감에 상처를 주는 결과가 될런지도 모른다…)
이것은 안되는 일이라고 현주는 안간힘을 쓰면서 부정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니 현주는 자신의 가슴에 구멍이 뚫어지는 듯함을 또 어쩔 수 없었다.
(용신이가 나하고는 아무관계도 없는 타인이 된다?)
용신이 몰래 현주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울기도 했다.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현주를 위해 다행한 일이랄까? 괴로움을 더해주는 일이랄까?
박훈씨 부부가 용신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노라고 Y 교수를 통해 말해 온 것이었다.
모든 것을 용서한다. 집에 들어오라. 음악을 전공하도록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는 이야기었다.
용신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현주로서는 처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그래서 Y 교수를 찾아가 박훈씨에게 그렇게 해주도록 부탁한 일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박훈씨로부터 아들을 데려가겠다는 말이 정식으로 오게되자 첫째 위기를 모면한다는 안도의 숨이 쉬어지고 둘째로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진행된다고 생각되면서도 현주는 앗찔해 짐을 어쩔 수 없었다.
(용신이 없는 집에서 어떻게 호흡해 낼수가 있을까?)
용신이는 아버지의 제안을 듣고
『흥 이제 와서?』
처음부터 문제를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선생님 옆을 떠날수 없어요. 떠나선 바요린 켜지지 않을 걸』
의례 그럴게 아니냐는 듯이 용신이는 도리어 침착했다.
『그게 말이 되나?』
현주는 일부러 놀라 보이고
『집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가 뒤를 잘봐줄거야. 그리고 이제 용신이두 차츰 마음에 드는 아가씨에게 장가두 들어야할게 아냐? 그때 두 선생님 옆을 떠날 수 없겠어?』
이번에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 장가? 흥, 선생님이 계신데 아가씨구 장가구 어디있어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 계신데 아가씨구 장가구 없다는 얘기예요』
현주가 앗찔해지면서
『아니 용신이 날 매장시킬 작정이군 그래』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매장?』
『용신이 말이 「나하구 결혼하겠다는 뜻으로 들려요.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난 매장되는 거야.』
『결혼하는데 왜 나빠요?』
『아니, 아니…』
현주는 그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쓸어질것 같았다. 너무 고마운 말이면서 또 너무 무서운 말인 탓이었다.
용신이는 벙긋 웃더니 농담처럼 말했다.
『걱정 말아요. 선생님 매장되지 않게 할테니… 내가 일생 결혼안하면 될거 아니예요.』
이일이 있은 뒤 현주는 더욱 고민했다.
현주는 억지로라도 용신이를 집으로 돌려 보내지 않아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제가 싫다면 가겠어요.』
현주의 강경하고 냉정한 말에 용신이는 화를 내면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현주는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면서 짐꾸리는 걸 도와주었다.
이윽고 택시를 태워 용신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데 성공했다고 할까? 그러나 용신이 탄 택시가 길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서있는 현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두뺨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