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苦痛中(고통중)에도 演奏會(연주회) 參席(참석)
「地上(지상)의 平和(평화)」는 偉大(위대)한 業蹟(업적)
“나를 同情(동정)마라 나는 滿足(만족)하다”
▲12일 주일, 7시 미사 그리고 책상에서 평온하게 집무, 12시 거실 창문을 열고 광장의 군중과 함께 삼종을 바치고 강복하셨다. 오후에는 잠깐 정원을 산책하시다 탑으로 가시어 밤까지 거기서 머무셨다.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항상 위벽 파열로 구강(口腔)이 타서 말라있었기 때문에 아주 가벼운 음식만을 조금씩 드셨다. 그러나 고해신부와 함께 지대한 관심과 열성으로 수정된 공의회 안건을 검토하시고 자기수첩에 메모하셨다.
▲5월 13일 월요일. 7시 미사 국무성장관 추기경을 접견하시고 다음에는 성 치릴로와 메토디오의 「슬라브」민족포교 1천백주년 기념행사 참가자를 접견, 이어서 가톨릭노동자범세계운동지도위원, 「뉴욕」박람회의 장단 삐사르드 추기경, 브라질대사 드수사 고메스, 그리고 전 레바논 대통령 싸문씨를 차례차례로 접견하셨다. 시의(侍醫) 가스빠리니, 맛쏘니 두 교수의 검진을 받고 악화되지 않았음을 확인.
▲5월 14일 화요일. 7시 미사, 비서가 교황께 개두포를 드리면서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성하 어떻습니까?』하는 물음에 『형틀위의 라우렌시오 같은 기분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즉시 고통과 병태가 침중해졌으나 9시경에 좀 가라앉았다. 11시 「밤베르그」 교향악단의 베토벤 전원 교향곡 연주에 참석하셨다. 11시45분 「루르즈」의 슈멧트 주교와 13시 15분까지 이야기하시고 이어 「체세나」의 쟌프란체스키 주교를 오랫동안 접견하시고 마지막으로 국무성장관을 만나셨다. 그리고 하루를 경당에서 고요하게 끝마쳤다.
▲5월 15일 수요일. 7시20분미사 밤에는 「룻까」의 아리고니 대주교이 제1차 「바티깐」 공의회 일기를 읽으셨다. 정오 「베드로」 대성전에서 일반알현이 있었다. 교황께서는 창백했으나 명랑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 알현은 가장 아름답고 화창한 5월 한가운데 있는 알현입니다. 5월은 또한 교회의 사회회칙을 상기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레룸 노바룸」 레오 13세께서는 노동자의 여러조건을 감안하시고 그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옹호하고 신자생활의 광명과 지침을 주시기 위해서 이 회칙을 반포하셨읍니다. 최근에도 두 회칙이 반포되었읍니다. 교황은 바뀌어도 그 사상과 가르침은 비록 시대적 발전과 그 여건에 적응하기는 하지만 항상 같습니다. 교회는 때에따라 악의 세력으로 비극적 위협을 당하는 역경에 처해있을 때라도 진리와 사랑의 정신으로 현존하고 가르치고 있읍니다. 「레룸 노바룸」 70여년후 반포된 「어머니와 교사」 「지상의 평화」 두 회칙은 주께서 자기의 비천한 대리자를 지켜주시고 교회안에 생활하시면서 보살피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이를 감응시키고 호응을 받게 했읍니다. 특히 「지상의 평화」 회칙은 땅의 돌도 흔들리게 했다 할 수 있을만큼 그 유례가 없을만큼 세계 어느곳에서나 일관된 호응을 받게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진리가 찬란히 빛난다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노경에 접어들어 나는 평온한 심정입니다. 내가 죽고난 다음에 무슨 활동에 변경이 있지 않을까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도 무엇을 조금 하기는 했읍니다. 그리고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은총과 가르침이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通交)가 항상 활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 속 깊이 확신을 갖고 예수님과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기다리지만 않고 나의 덕행과 사도직의 열정으로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총의 승리를 촉진시키며 형제애를 고무하고 어떤 형태의 분열도 저지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위안을 느낍니다. 즉 뭉치는 모든 것을 다 사랑할 수 있도록 밀고 싶습니다. 주께서는 온세계를 구원하러 오셨고 또한 오늘도 구원과 자비와 평화이 활동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심한 육체적 고통을 보고 근심하는 측근자들에게 고요히 『나에게 동정하지 말라 나는 정말 만족하다』 하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