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의 劇(극)(「행복한 날들」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 광대노름”
不理(불리)세계에 버려진 人間(인간)
地上(지상)의「猶豫(유예)」기간 동안 부질없는 몸짓과 말
그러나 지옥서 울려나오는 황홀한 행복감
황량한 사막에 목이 잠긴 女人(여인)의 獨白(독백)
올리비에·드·마니는 베케트의 연극을 일컬어 형이상학적인 광대놀음이라 하였다. 1953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빠리」에서 공연하여 일약 前衛演劇의 대가로 등장한 베케트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가장 어둡고 비참한 人間像을 그려 놓았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 내던져진 人間 그리고 그 人間存在의 무의미함을 무대 위에서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행복한 날」들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노름의 끝장」 등의 문제작을 뒤이어 나온 후기작품으로 61년 처음으로 「뉴욕」에서 원문인 영어로 공연되었고 63년 10월에는 「빠리」의 국립극장 「오데옹」에서 불어로 무대에 올려졌다.
뜨거운 햇볕에 풀포기마저 그슬린 황량한 사막. 그 한가운데 불룩 솟아있는 언덕에 허리까지 파묻힌 오십대의 여인 위니가 엎드려 있다. 접은 양산과 커다란 빽이 옆에 놓여있다.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리며 위니가 깨어난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위니는 빽에서 칫솔과 치약을 꺼내 이를 닦는다. 거울을 본다. 루-즈를 바른다. 또 칫솔의 상표를 읽노라 안경을 쓴다. 그래도 안보여서 확대경을 꺼내 읽는다.
빽을 뒤지다 권총이 나온다. 허공을 한번 겨누어 보고는 다시 입맞추고 넣어버린다. 또 모자도 꺼내 써 본다. 이같이 위니는 열심히 행동하고 있다.
『머리를 빚었을까?』 그 여자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할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도 적으니까. …모든걸 다 하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건 다만 인간적이니까 다만 인간의 본성이니까』
이렇게 무수한 몸짓을 하는 위니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계속한다.
『위니, 이제부터 이걸 해야지』 마치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말이라는 듯이 침묵이 오는 것을 무서워하듯 안간힘을 써서 말을 이어간다. 회상도 하고 칫솔의 상표도 읽고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이 말하듯 『존재한다는 인상을 갖기 위해 우리는 뭣이든지 항상 할 말을 찾아낸다』고 위니는 생각하는 것인가? 이것은 마치 침묵과의 대결과도 같은 피나는 투쟁이다. 『사람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란 별로 없어요. 모두들 얘기하지요. 모든 걸 얘기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라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데도 진실은 없어, 내 팔 내 젖가슴. 무슨 팔? 무슨 젖가슴?』 그러나 그는 의식이 살아있는 한 침묵할 수는 없다. 침묵은 그대로 「無」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위니의 옆에 놓여 있는 커다란 빽속에 들어 있는 자질구레한 일상용품들은 그 여자에게는 하나의 「援軍」과 같은 존재다. 할 말이 떨어졌을 때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이란 그다지도 적으니 그 물건들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增援軍」이 된다.
『그래, 빽이 있어,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그것을 이용해야지』하고 위니는 말한다. 『그들이 없이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말이 의미를 잃었을 때 그들이 없으면 뭘 할 수 있겠어요?』 침묵과 싸우는데 한점이라도 따기 위해선 온갖 수단을 다해야 한다.
이리하여 베케트의 人間은 부르짓는다. 『그렇지 말할 건 거의 없고 할일도 거의 없는데 두려움은 그다지도 크니. 어느날 막바지에 서게 될까봐. 잠자라는 벨소리가 나기 전에 주어진 시간동안 말 할 것이 전혀 없고 할일이 전혀 없고 다만 세월이 지나간다. 날들이 지나간다. 벨소리가 났는데 전혀 말한 것도 없고 행한 것도 없다면 이것이 바로 위기야』 허리까지 땅속에 파묻치고 조금 후에는 목까지 파묻혀(2막) 꼼짝달삭 못하게된 人間, 와야할 끝장을 기다리며 그 「猶豫」기간을 이렇게 무의미한 몸짓과 말을 지껄이는 것이 人生이란 말인지!
그러나 베케트의 人間은 빈 하늘에 부닥쳐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자기의 목소리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위니는 자기가 묻친 언덕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남편 윌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던진다. 남편은 햇볕 때문에 구멍 속에 들어박혀 거의 대답을 하는 일이 없다.
위니는 말한다. 『혼자 얘기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그것은 내게는 황무지 같은 거에요. 그래서 당신이 거기있는 거지요』 『거기서 내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하면 족해요』 이렇게 위니는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또 동의를 구한다.
남편 윌리가 어쩌다 대꾸를 해올 때면 위니의 얼굴은 행복해진다. 『오늘은 당신이 내게 얘기하려는 군요. 오, 다시금 행복한 하루가 되려나 봐요』 그는 끊임없는 독백을 누군가를 위해 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위니 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순간이야 너는 전적으로 혼자서 말하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내가 계속해서 말하고 계속해서 서로 듣겠끔 말하게 하는 것이지』
마지막에 남편 「윌리」가 나타난다. 그는 원하고 부르며 위니에게로 손을 내밀고 언덕을 기어 올라가려고 한다.
위니는 그것을 보며 『마침내 나있는 데로 오는군』하며 행복한 표정이 온 얼굴에 넘친다. 윌리는 기어오르려다 그대로 언덕 아래에서 쓰러진다. 고개를 위니에게 돌린채. 위니는 고요히 노래 부른다. 물론 여기는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세계다. 결함도 없고 해결도 없다. 그러나 무엇인지 따뜻함이 있는 세계, 가슴이 저려오는 연민이 있는 세계가 아닌지?
이때까지의 베케트의 인물들은 모두 냉철하게 자기의 부조리한 人生을 부조리한 것인 줄 알면서 살고 있는 듯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의 인물들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그동안을 메우는 놀이를 하고 있다. 그것이 무의미한 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계속하지 않을 수 없기에 놀이를 계속 한다. 그러나 위니는 비참한 자기조건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다. 허리까지 다음엔 목까지 흙더미에 파묻혀있는 참혹한 지경에서 『그거참 근사해』 『오! 또 다시 행복한 하루가 되려나 보군!』을 되풀이 한다. 이것은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더욱 비참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지옥 속에서 울려나오는 황홀한 행복감을 말하는 이 베케트의 人間을 우리는 눈앞에 대할 때 가슴 뭉클해지는 연민을 어쩔 수 없이 느낀다.
남궁연(聖心女大佛文科長·文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