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47) 분수령 ⑬
발행일1969-12-07 [제696호, 4면]
용신이를 집으로 보내긴 했으나 그 뒤에 현주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몸이 땅에 붙지 않는 듯한 생활이었다.
용신이의 소식이 가끔 들려왔다. 정진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이야기었다.
C씨도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기대가 무척컸는데…』
현주를 보고 말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현주는 더욱 마음이 답답했다.
(다시 데려 올까?)
이렇게도 생각해 봤으나 그것은 오히려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용신이는 가끔 현주에게 찾아왔다. 자신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심각한 표정과 태도를 안타까와 했다. 그럴 때마다 현주는 용식이를 다시 데려오고 싶은 충동을 누를길 없었다.
그러나 역시 그럴수 없었다. 현주자신이 마음을 가누어 잡아야 했다.
그동안 태만했던 미사에 부지런히 참예했다.
가까운 성당의 김 신부는 신부로서 뿐아니라, 교양인으로서 원만하고 원숙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신부라는 입장에서가 아니고, 종교적인 교양인으로서 인생문제에 대해 많은 글을 썼고, 방송에도 나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건전한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는 것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고 있었다. 몇권의 논문집도 발간하고 있었다. 그 김 신부는 원채 원숙한 인물이라 현주가 갑자기 성당에 열심인 것을 민감하게 발견했으나 현주가 말문을 열기전에 앞질러 말하지 않았다.
다른 교우들이라면 방법이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현주같은 교양인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고난을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여유와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현주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가라앉으려면 이때라 싶게 용신이가 나타나 그 가라앉으려는 마음을 훼방을 했다.
(용신이를 김 신부에게 부탁해야 된다.)
현주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현주는 김 신부를 신부로서라기보다 원만한 교양인으로 집에 초청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에 현주는 용신이의 이야기를 했다.
용신이의 이야기를 하려니 박훈씨가 십년전에 청혼했던 사연 거절했던 일을 전제로 들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집을 뛰쳐나온 용신이를 음악가로 길렀던 이야기… 지금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표현을 완곡하게 현주는 용신이 와의 사이를 이야기했다.
김 신부는 그 원만한 얼굴을 더욱 부드럽히게 하면서
『뭐 고민할것두 없는 일이군요.』
가볍게 말했다.
『옛?』
현주는 깜짝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 신부는
『박청년 교운가요?』
하고 물었다.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김 신부는 한참 생각하더니
『박청년 기회있는 대로 나한테 보낼 수 있을까요?』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예 그럴수 이겠지요.』
김 신부는 현주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으나, 역시 현주자신이 해결할 수 있도록 여유를 남겨둔다는 방편을 견지하는 모양이었다.
김 신부의 만찬이 있은지 며칠만이었다.
현주는 용신이를 타일러 겨우 김 신부를 방문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김 신부와 박용신이와의 사이에 어떤 대화가 교환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용신이도 일절 입밖에 내지 않았으나 김 신부는 아무말도 없었다.
그런대로 날이 흘렀고 XX교향악단의 바요린콘체스트에 C씨가 대담하게도 용신이를 바요린 주자로 내세우게 된 일이 생기게 됐다.
한때 바요린에 대해 정진을 게을리하는듯하던 용신이라 전처럼 열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은 김 신부를 방문한 뒤부터였다. 김 신부와 만난 것은 한번만이 아니었다. 몇 차례. 그 몇 차례에서 역시 김 신부와 용신이와의 사이에 무슨 대화가 교환되었고 그것이 용신이로 하여금 용기와 열의를 회복하도록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용신이는 바요린 협주곡의 바요린 연주에 또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주는 그날 밤도 용신이를 집에 데려다가 무수한 치하를 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용신이는 전번과는 달리 의젓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뇌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선생님 아니면 전 없어요.』
『그건 무슨 말인가?』
『선생님이 계시니까 오늘의 제가 있는 거얘요.』
전과는 달리 과격한 표현은 아니나, 현주로서는 의미심장하게 듣지 않을 수 없었고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개구리 올창이때일을 잊어 먹는 세상)에 용신이는 거듭거듭 현주의 은혜를 강조하고 그걸 입밖에 내어 들려준다. 현주는 전과는 달리 도취되는 심정이었다.
현주가 전부터 연락을 취해두기로 했으나 C씨편에서도 협력해서 박용신이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가게된 것은 협주곡연주가 있은지 반년지난 뒤였다.
여권수속이 비교적 간단하게 끝나 용 신이는 초여름의 어느날 오후에 김포비행장을 뜨게 됐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용신이는 현주에게 남이 듣지 않는데서 한마디를 했다.
『김 신부님에게 숨김없이 이야기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