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28) 돌아와서 ②
발행일1969-07-06 [제676호, 4면]
Y교수가 묻는대로 대답을 하면서도 현주는 김포가도며 제2한강교며 신촌에서부터의 높히 솟은 빌딩 등등 그동안 눈부시게 변한 서울을 놀라는 시선으로 내다보았다.
『어머 그동안 이렇게 변했군요.』
변해진 서울이 또 현주를 정답게 맞아주는 듯 했다.
Y교수는 시청앞에서 내리고 현주는 어머니와 함께 곧장 집으로 갔다.
집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 주변은 역시 알아볼 수 없을만큼 달라졌다.
시가나 길이나 건물들만 달라진게 아니었다.
매스콤이 8년전보다 훨씬 활발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현주의 귀국을 매스콤은 좋은 재료를 제공받은 것처럼 떠들어댔다. 라디오와 TV에서 현주의 인터뷰를 방송하고 주간지(週刊紙)에서는 현주를 입지전(立志傳)의 여주인공처럼 대문짝만한 사진을 곁들여 소개했다.
그럴때에는 의래건
『결혼은?』하고 묻곤했다.
『해야지요.』
현주는 서슴치않고 대답했다.
『상대는 어떤 남성?』
현주가 어름어름
『건실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이렇게 대답하면 기자들이 윤기를 붙여 그럴듯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현주에게 결혼에 대한 설계는 없었다. 당장은 박훈씨나 최호진의 소식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인사도 다니고 매스콤에 불려다니기도 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어느날이었다.
혜경이 저의 집에 초대했다.
어머니와 함께 청했으나 어머니는 싫다고해서 현주가 혼자 가기로 했다.
혜경이는 시집살이를 하지 않고 M아파트에서 저희끼리만의 살림을 펴고 있었다. M아파트도 현주가 떠날때에는 없었던 것, 외국의 엔간한 아파트에 질배 없었다.
그러나 현주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혜경이가 아주 주부꼴이 박혀있을뿐 아니라 척척 부엌의 일을 처리하는 품이 믿음직스러운 점이었다.
주군도 집에서 보니 더욱 자리잡은 신사답게 느껴졌다.
차려놓은 방, 걸려있는 그림이며 기구하나 하나가 벌써 손때묻고 자리가 잡혀 보였다.
현주는 다시금 자신만이 여성으로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주는 응접의자에 걸터 앉아 차를 마시고 있노라니
『늦어 미안하게 됐네.』
귀에 익었던 목소리가 들리면서 들어서는 사람은 최호진이었다. 함께 들어오는 여자는 부인이었다. 다섯살쯤 된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잘 다녀오셨지요?』
최호진은 현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에 부인을 소개했다.
『오시는 날에 비행장에 나갔어야 하는건데…』
최호진의 부인은 무척 서글서글한 인상을 주었다.
『애순아 아주머니께 인사해.』
서글서글함을 더욱 들어내면서 딸아이더러 현주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아주머니 잘 다녀오셨어요?』
또렷한 발음으로 아이는 말하면서 공손히 머리를 굽힌다. 엄마를 닮아 둥그스럼 복스럽게 생긴 아이였다.
『야, 이쁘구나. 이름이 뭐지?』
『최 애순이얘요.』
『최애순. 이름이 아주 좋구나.』
『아빠가 지었대요.』
『아빠가?』
현주는 최호진을 힐끔보았다. 최호진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몇살이지?』
『다섯살이얘요.』
『다섯살? 셈 몇개까지 세지?』
『하나 · 둘 셋…』
하더니 애순이는
『열다섯까지 세요.』
하고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유. 열다섯까지…』
현주는 또 물었다.
『엄마 이뻐 · 아빠 이뻐?』
『엄마두 이쁘구 아빠두 이뻐요.』
『공평하구나.』
주군도 애순이를 귀엽게 보면서 끼어들었다.
최호진 부부는 이집에 자주 다니는 모양이고 아이들도 서로 친하게 지내는듯 했다. 주군의 아들이 뛰어오더니
『애순이 왔구나, 저기가자.』
저희 방으로 애순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우리 음식 먹고싶어 어떻게 견디었어요?』
최호진의 부인은 현주를 만나는 사실이 대견한 모양 여러가지를 묻고 그동안 고생되었을 일에 대해서는 언잖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참 좋은 여자다!)
현주는 최호진의 처에 대해 더욱 호감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두 부부에게 고마운 생각도 금할 수 없었다.
최호진은 「프로포즈」했던 처지다. 부인은 그런 사실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둘은 그런것엔 아무 구애도 없이 환영파티에 와서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질투와는 반대되는 축복하는 마음이 현주를 오히려 행복하게 만들었다.
최군 부부외에 달리 손님을 청하지 않았다.
『얘너 나오기를 기다리느라고 집을 짓지 않고 아파트 생활하고 있다. 얼른 하나 설계해줘. 귀국 첫작품이 우리집이 된다는거 얼마나 좋겠어…』
식사를 시작하면서 혜경이가 수다를 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