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年代(년대)의 敎會像(교회상)
敎會刷新(교회쇄신)의 위대한 轉機(전기)
“多樣性(다양성) 안의 一致(일치)” 具現(구현)이 目標(목표)
公議會(공의회), 겨우 始作(시작)에 不過(불과)
權威(권위)의 危機(위기)-最大(최대)의 難題(난제)
믿음, 소망, 사랑없이 克服(극복) 못해
『도대체 지금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종내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 60년대의 교회상을 이렇게 간단히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 방황하는 敎會
교회에 대한 이러한 위기(危機) 의식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불안감이요, 그중에서도 주로 신부와 수사 수녀들이 『과연 교회가 아직도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 교회 안에 우리가 설 땅은 어디에 있는가?』하고 느끼는 허탈감이요, 소외감일 것이다.
공의회가 끝났을 때 그 16개의 결의문서의 관철을 위해 거의 모두가 희망에찬 낙관적인 시작을 외쳤다. 독일의 어느 주교는 「로마」를 떠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냈읍니다. 우리 주교들은 이제 묵은 사람으로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기운찬 출발을 예고한바 있다.
■ 公議會의 始作
그러나 공의회 관철에 따라 앞으로 교회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모두가 낙관한 것은 아니다. 어느 신학자는 시작이 아니요, 시작 중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사실 아직 거의 모두가 글자뿐이요, 이 글자가 완성되는 것은 글자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靈)과 생활과 봉사와 믿음과 소망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자기의 사명을 깨달았으나 그것은 이제부터 다해야 할 사명이었다.
공의회 이래 새로운 교회상이 널리 얘기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가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숙고함으로써 얻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의식을 말한다. 교회가 남을 비판하는 주체가 되었을 뿐아니라 더 나아가서 자신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마 금번 공의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 敎會 多樣性 認定
교회가 자신에 대한 새 인식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지방교회도 하나의 완전한 교회라는, 즉 교회의 다양성(多樣性)을 시인한 사실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중앙집권이 지나쳤음을 자인함으로써 앞으로 지방분권(地方分權)의 제도개혁이 불가피한 사실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교회헌장은 「다양성안의 일치」란 이상을 추구하고 있지만 사실 그 조화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나친 획일성의 주장은 다양성을 해치는가 하면 지나친 다양성은 통일성을 손상시키기 마련이다. 여기에 보수와 신진의 대립이 일어난다. 보수나 신진이나 다 공의회 문서자체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해석의 차이로서 하나는 최소한의, 또 하나는 최대한의 해석을 서로 주장하는 때문이다.
■ 權威의 危機
지방분권이란 제도개혁 과정에서 교회가 겪는 가장 큰 상처는 권위의식의 감소이다. 이른바 「권위의 위기」로서 교회가 당면한 위기 중에 가장 큰 것이 아닐 수 없다. 주교는 교황에게, 신부는 주교에게, 신도는 신부에게 반항하는 하극상(下극上)의 비극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화란교리서를 둘러싼 교황청과 화란주교단의 대립, 교황의 산아제한 칙서에 대한 주교들의 비판, 프랑스 일부 성직자들이 주교에게 항의한 결혼과 직업의 자유, 평신도의 결정권에의 참여요구 및 교회의 민주화 주장, 산아제한에 대한 신자 부부들의 자주성요구 등이 권위위기의 두드러진 세일 것이다.
■ 信仰의 危機
교회는 앞에서 말한 권위의 위기 외에 또 다른 위기에 처해있는데 다름 아닌 「신앙의 위기」이다.
그러나 권위의 위기까지 합쳐서 하나의 신앙의 위기로 보고들 있는데 왜냐하면 권위의 위기가 제도상에서 기인되는 것이라면 제도에 앞서 교회의 생존적인 성분인 신앙의 위기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안될수 없다는 것이다.
■ 無神論的 生活
무신론적이고 속화된 세상과 사회와 생활관에 적용하여 이제 믿음이 새로 설명되고 전달되어야 할 것은 사실이다. 신(神)의 죽음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신자들 안에도 있는 것이니 물론 그들은 이론상의 무신론자는 아니나 실제로 생활상의 무신론자들이다. 이러한 실제적 무신론적 신도단 앞에 신부는 과거모양 성사만으로는(EX OP ERE OPERATO) 도저히 자위할 수 없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론의 여지가 없고 자명하던 자기 자신의 신앙에 대한 회의와 함께 신앙의 선도와 증거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아주 어렵게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사랑만으로 克服
칼 라너 교수는 『앞으로 행정이 잘되고 신학이 깊어지고 법률이 명백해진다하더라도 결국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고취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그 본연의 의의를 잃고 만다』고 하였다. 우리는 방법과 목적을 분간해야 한다. 공의회는 하느님이 교회에 준 선물이다. 공의회의 관철 또한 하느님의 힘과 도움이 없이 결코 성취될 수 없으니 바라건대 교회의 위기의 극복을 위해 하루빨리 제2의 성신강림이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최석우 신부(서울양화진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