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넘치는 家庭(가정)] 白武祚(백무조)氏(씨) 農場(농장)을 찾아서
月例會(월례회)로 家族不滿(가족불만) 解消(해소)
現代化(현대화)된 果園(과원) 外國人(외국인)도 見學(견학)
誠實勤勉(성실근면)을 生活(생활) 信條(신조)로
東村(동촌)성당건립의 숨은 공로자
대구시민들의 휴식처 동촌유원지에서 경주방면 국도를 따라 차를 몰면 왼쪽에 동촌성당의 붉은 벽돌집이 우뚝서있고 여기를 지나 과수원 속으로 뚫린 차도를 따라 5분쯤 더 달리면 오른쪽에 큰 과수원 가운데 빨간지붕의 아담한 양옥집이 눈에 띈다.
산뜻한 저택과 빽빽히 들어선 과목들은 외국의 한적한 농촌풍경을 연상케 한다.
여기가 바로 동촌본당의 운영위원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에 헌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가 정적으로는 4남3녀의 아버지로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백무조(요아킴·66세)씨의 농장이다.
농장의 규모가 크고 그 영농방법이 현대화된 모범 과수원이기 때문에 대구를 찾는 외국 손님들은 의례 이집으로 안내되어 한국인의 가정생활 풍습 등을 배워간다고 한다.
홍옥·축·국광 등 사과나무 8백주가 빽빽히 들어선 1만3천여평의 농장에서는 연간 8천여 상자의 우수한 사과를 생산 그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라곤 오직 「신심」하나뿐. 이 「신심」만을 바탕으로 해서 성실과 근면을 생활신조로 꾸준히 노력하여 오늘날 이 광할한 농장을 이룩하여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32년전 결혼한 부인 신화순(마르따·52세) 여사와의 사이에 7남매중
장남 영직군과 3남 영제군은 경북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각각 재학 중이고 차남 영경군은 대건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인데 앞으로 신학생이되는 것이 희망이라고 한다. 막네동이 영죽군은 영신국민학교 5학년 재학 중이다.
또 3여 효숙양은 현재 불란서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출가한 장녀는 부산 데레사 여고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으며 차녀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부영사 부인이다.
이와 같은 다복한 가정의 아버지 백 회장은 15여년전 서정길 대주교의 동촌지역 포교선언에 따라 이가브리엘 신부가 하는 사업을 도와 동촌성당 신축을 위해 침식을 잊다 싶이 동분서주한 결과 1957년 10월 25일 영광스러운 성당 낙성식을 보게 됐다.
백 회장은 또한 사재를 들여 대구방촌동에 공민학교를 세우고 주위의 불우한 아동들을 모아 그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사해 주고 있다.
백 회장은 매월 한번씩 전가족이 모여 월례회를 연다고 한다. 가족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불평불만을 이 자리에서 서로 기탄없이 말하고 그 잘못을 시정해가는 모임이라고 한다.
적은 불만이 씨앗이되어 이것이 자칫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불행으로 확대되는 일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월례회는 이러한 불행스러운 결과를 사전에 막고 가족들의 융화를 더 한층 굳게 하고 가정의 화목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백 회장은 말한다.
이 월례회의 회비는 50원인데 막내동이 꼬마에서 백 회장자신 까지 모두 낸다고 한다. 자녀들은 모두 제나름대로 집안일을 돕고 있는데, 그 노력의 대가로 매월월급을 준다고 한다. 이 월급에서 월례회비를 내고 남은 돈은 모두 저축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백 회장은 흐뭇해 한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만 생긴다면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고등공민학교 건물을 산뜻한 새건물로 신축, 남은 여생을 육영사업에 바치고 싶다』고 말하면서 간편한 복장에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서는 이 믿음직스러운 농부의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는 정열과 신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