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그의 6週忌(주기) 맞아 敎訓(교훈)을 되새긴다
宇宙開發(우주개발)에 큰 關心(관심)
케네디 미더운 親舊(친구)
▲5월 16일 7시 미사, 이 미사에는 갓 결혼한 조카딸이 장부와 함께 참례했다. 11시에는 교황청립전교사업회 각국지도자들을 접견하시고난 다음 아가지아니안 추기경 안내로 성 베드로 사제기숙사를 방문하셨다. 교황께서는 창백하게 보였으나 목소리는 창창했고 꾸김새없이 활짝 핀 미소로 변함없이 모든 사람을 대하였다.
공식 인사말을 낭독하신 후 감회어린 어조로 측근에게 자기 80평생이 정확히 2등분 되어 40년은 출신교구에서 그리고 나머지 40년은 포교성성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셨다.
그러면서 생의 종말까지 선교사로 자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개발사업과 그리스도신자의 예언적 사명에 대해서 낙관적 견해를 표명하시면서 『나는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완성해 나가고 있는 우주개발사업에 호감을 갖고 관찰하며 기도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성공이 형제애를 촉진시키고 인류문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높이와 속도와 기술의 승리를 초월하는 우리의 사명을 잊지말아야겠읍니다. 사명은 바로 희망에 가득찬 계속적인 노력으로 사람을 하느님께로 접근시키며 지상에서 복음의 얼을 생활속에 침투시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18시부터 2시간 동안 국무성 외교차관보 가사롤리 몬시뇰과 이야기 하시면서 항상 지대한 관심을 갖고있는 동구라파교회문제를 논의하셨다. 자기 일기장에 『빛으로 낮을 식별할 정도로 쇠약해졌구나』라고 술회하셨다.
5월 17일 금요일 7시30분에 미사성제를 봉헌하시고 스스로 마지막 미사라 하셨다. 정작 마지막이 되고말았다. 아침나절에 애란 클론페르트 주교로 임명된 옛날 「이스탄불」에서 자기 비서였던 토마스 라이안 주교를 접견하시고 그에게 직접 성성주례를 할 수 없음을 섭섭히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국무성 영어담당으로서 성청에 기여한 봉사에 참말 감사한다고 하시고 덧붙여 『당신이 옛날 「이스탄불」에서 나에게 기초를 가르칠때 내가 바랐던 것만큼 나는 유창한 영어습득에 성공하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여하튼 영어를 읽고 해득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읍니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배우려 노력한 것은 영어를 하는 모든 나라사람들에게 대한 나의 존경심에서 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소』라고 하셨다.
▲18일 토요일 침상에서 미사에 참례히사고 성체를 영하신후 오랫동안 기도하셨다. 국무성 외교차관 사모레 몬시뇰을 만나려고 일어나시어 1시간20분동안 그와 이야기하고 창백하게 기진해서 다시 누우셨다. 오후에 2시간동안 고해신부와 고요히 가까워진 천국과 즐거움으로 받아들인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시고 난 다음 여러사람들을 회상하시고 특히 먼 유년시대에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셨다.
국무성 일일회보를 읽으시고 「지상의 평화」 제5항 그리고 아주베이 접견에 대한 거듭되는 혹평을 알으시고 심한 타격과 쓴맛을 체험하셨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한마디의 단죄의 말도 끝내 나오지 않았다. 미사후의 잘 염하시는 『주여 나는 모르겠나이다. 다만 당신께 온전히 맡기나이다.』라는 기도만 되풀이하셨다. 이런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미국대통령 케네디로부터의 특별 메시지가 바로 이때에 도착되었다.
이 젊은 국가원수는 일부러 자기가족의 친구인 보스톤의 쿠싱 추기경을 불러 교황께 특별히 미국신문 · 잡지에 실린 그릇된 논평에 대한 자기의 유감의 뜻을 전해줄 것을 당부하고 『미국대통령이 몇몇 신문 잡지 그리고 정계 뒷공론에서 교황께 대해 일어나는 논평이 전혀 근거없는 것임을 잘 알고 개탄하고 있다는 것을 교황께서는 꼭 알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