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약현언덕 위에 마치 속세를 훈계하는 성자와 같은 기품있는 자태로 우뚝 솟아 7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부드러운 종소리로 서울시민들을 일깨워 준 낯익은 약현성당(중림동성당).
이 성당은 신자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신앙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것은 박해가 끝난후 한국 최초로 세워진 「뾰죽성당」이라서가 아니라 모진 태형을 딛고 일어선 굳센 신앙의 승리의 상징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는 우아한 자태로 우리와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최초의 신품성사를 통하여 세분의 신부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약현본당의 역사는 실제로 초대본당신부인 정 가밀로(佛人 · 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오기 4년전인 1888년 지방신자들이 서대문 외수릿골(현 순화동에 강당을 짓고 미사를 드린때부터 시작되나 1892년 본당이 설정돼 본당의 공식 역사는 금년으로써 77년이 되고 정 신부가 그의 사재로 한국최초의 고틱식 건물로 성당을 준공한 해로는 76년의 역사가 된다.
그후 초기본당의 기틀이 이땅에 뼈를 붇은 불란서 신부들과 열심한 신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굳혀졌다.
이들중엔 박해중에도 불구하고 북경의 주교에게 신부파견을 교섭하려 걸인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넘었던 김성흠(聖欽·요한)을 비롯하여 1866년 새탐터에서 순교한 장 주교의 시체를 찾기위해 암호를 「예수」라 정하고 밤중에 몰래 숨어들어 갈기갈기찢어진 시체를 꿰매어 안장한 金致凡(프란치스꼬) 김興民(요한) 朴順集(베드로) 金大鳳(토마) 1895년에 설립된 加明보통학교를 맡아 인재교육에 힘쓰던 朴永祚(바오로) 등은 모두 교회사적인 인물들이다.
역대신부들중엔 폭넓은 인품과 두터운 신앙으로 지금도 신자들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분이 많다. 특히 2대 우일모 신부 3대 김윤근(요셉) 신부 5대 신인식(바오로) 신부 등은 대표적이다.
우 신부는 너무 어린이들 머리를 잘쥐어박는 통에 별명이 「우딱딱이」었다고. 잘못해도 딱 잘해도 딱 오랫만에 뵈어도 반갑다고 딱 그때 군밤(?)을 얻어 먹었던 세대가 지금은 사회의 중견으로 성장했다.
그옛날엔 서울의 사대문밖이 모두 약현구역이었다. 1933년 통계를 보면 신자수 4156명, 그후 영등포 서대문 청파동 아현동 등에 본당이 세워져 분가시키고 지금은 신자수 4천5백명에 세대수 1천으로 서대문구 일대 9개 동을 관할한다.
그러나 77세의 노본당이 초기의 화려했던 역사에 비해 해방이후 근래에 이르기까지 이렇다할 움직임 없이 침체되어 마치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한적하게 세월을 보내는 늙은 부모와 같은 인상을 주어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초창기의 열성적이었던 노장층 세대와 그뒤에 성장한 젊은 세대간의 긴밀한 대화 결여와 역사와 전통의식 속에 안주하려는 노장층이 아직도 본당운영과 기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중림동 일대 성당 주위에는 몇십년전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는 신자들이 많이 살고있다.
이러한 본당분위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분이 현 주임 박 토마(병윤) 신부이다. 66년 부임하자 「약현은 잠자는 본당」이라는 선언과 함께 침체된 분위기를 하나씩 갱신하기 시작했다. 우선 35세 이상의 부인들을 모아 십자부녀단을 조직하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정신을 생활화 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신자들을 정신적으로 한우리에 묶어 신앙위에 실제생활을 그리스도화 하는데 모범을 보인 것이니 본당의 핵심운동으로 성장했다.
한편 본당운영은 각 구역대표 30여명으로 구성된 평신도사도총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총회는 재정 · 사도 · 위령 · 기성 · 청소년의 5개분과위원회를 두고 각 분야별로 분과위원회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총회에서 종합하여 실천에 옮긴다.
매월 마지막 주일은 평신도가 강론을 하게하여 공의회정신에 입각한 평신도의 활동 기회를 넓혀주고 있다.
금년초에 새성당 건축을 둘러싸고 그위치 문제로 열띤 논란을 벌인 일이 있다. 현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 짓자는 의견과 역사적 유물을 헐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서 한동안 논의 끝에 천주교회 기념탑이며 국보적 건물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어서 현 성당은 그대로 보전하고 요셉병원 자리로 결정을 보게된 것이다.
내년초 착공예정인 새 성당은 총5백5십평의 현대식 건물로 1층은 유치원, 2층은 청소년센타로 도서관, 오락실, 음악감상실까지 계획하고 있다.
또한 3층은 3백여명의 「매머드」성당을 건립할 것인데 4천여만원의 건축비 문제를 놓고 본당신부와 신자들은 연일 모임을 갖고 대책을 협의중이다.
이제 악현은 오랜 침묵으로부터 새로운 발돋움을 시작하고 있다. 십자부녀단의 성당에서 인사하기 운동이나 한주일동안 사탕값을 모아 한장 두장 새성당의 벽돌값을 장만하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정성이 비록 조그만 일일지라도 그것은 거독을 소생시켜 꽃피울 수 있는 물과 거름인 것이다. (健)
역대주임신부
1대 정 가밀노(佛) 1892~1917
2대 우 바오로(佛) 1917~1926
3대 김윤근(요셉) 1926~1942
4대 이선용(바오로) 1942~1946
5대 신인식(바오로) 1946~1954
6대 김철규(발바라) 1954~1961
7대 신인식(바오로) 1961~1963
8대 신인균(요셉) 1963~1966
9대 박병윤(토마) 1966~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