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29) 돌아와서 ③
발행일1969-07-13 [제677호, 4면]
『첫작품?』
현주는 배시시 웃으면서
『글쎄…』
어물 어물한 표정을 지었다.
『얘 우리집은 안되겠다는거야?』
혜경이 샐쭉한 것 같이 꾸며보였다.
『안되긴…』
『그런데?』
『너희집이라니 공연이 책임이 무거워져 그러는거야』
『무거울거 하나두 없지 뭐야…』
이런 화제로부터 이야기는 구미 각국의 건축양식에 대해 현주편에서 묻는 대로 많이 입을 열었다.
주군과 최호진 부부는 현주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고 얻는바 많다고 생각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아이들도 한자리에 끼게해 노래를 시키는 등 더욱 흥겨운 자리를 마련했다.
『누가누가 잘하나?』
최호진은 전에 현주에게 푸로포즈할 즈음에는 그렇게 수줍고 비능동적인 태도였으나 그사이에 성격이 변한듯 아주 능동적으로 말을 하고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먼저 주군의 큰 아들을 일으켜 세워 노래를 시켰다. 국민학교 일학년인 그애는 서슴치 않고 일어서더니 목청을 높여
『…백마부대 용사여…』
군가를 씩씩하게 불렀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머리를 뻣뻣이 들고 노래부르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게 현주에게 보였다. 다 부르고 나서 끄떡 인사를 하는 동작도 무척 귀여웠다.
현주는 다른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충동을 걷잡을 수 없었다.
최호진의 딸은 주군의 아들과는 달라 여자아이답게 두손을 앞으로 포개쥐고 알뜰하게
『엄마 앞에서 짝짝궁 아빠 앞에서 짝짝궁…』
부르고 나서 박수를 받은 뒤에 다시 다른 곡목 하나를 선자리에서 더불렀다. 그곡은 아마 텔레비젼의 연속극 주제가인듯 어린이들이 부르려도 박자나 가사를 제대로 맞추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그걸 곧잘 불렀다.
『야 애순이 급수가 높구나.』
주군이 애순이를 덥썩 안아 볼에 뽀뽀해 주었다. 그걸보고 주군의 딸, 이제 세살짜리가 샘이 나는 듯한 표정으로 제 아빠 옆에 가서 무릎에 올라 앉으며 애순이를 밀쳤다.
『얘가 샘을 내는구나!』
하더니 주군이 딸을 껴안고 역시 볼에 뽀뽀해 주었다.
『나두 노래하겠어.』
그제야 좋아하면서 주군의 딸아이가 일어서서 경례를 하고
『송앗찌 송앗찌 얼룩 송앗찌!』
겨우 흉내를 냈으나 정확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다른 아이때보다 더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뛰어가 품에 안겼다.
현주는 혜경이이 표정을 아까부터 보았다. 에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있을때의 행복한 얼굴, 지금 딸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의 흐뭇해 하는 표정!
현주는 자신의 지난 8년이 삭막한 것으로 느껴짐을 어쩔 수 없었다. 결혼을 했어야 되는 것을…하고 생각해 본 일은 가끔 있었으나 이 자리에서 처럼 결혼하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뼈저리게 삭막한 것으로 느껴져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공부를 더 했다는 사실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 공부는 공부고 결혼은 결혼이다.
(하필 친구들이 이런 좌석을 마련해 주었을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래 눈치빠른 혜경이가 현주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이
『부럽지?』
하고 현주를 본다.
『글쎄』
『얼른 결혼해요』
『글쎄』
혜경이네 집에서 나와 최호진 부부와도 갈라져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니 호젓한 심정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튿날 또 바쁜 일에 휘몰려들게 되자 그런 심정은 도망치고 말았다.
바쁜 일이란 A설계사에서 우선 현주를 초빙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이 회사에서는 현주를 고급(高級)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인기전술도 겸하고 있었다. 한국 유일의 학위를 가진 여류설계가의 입사, 그 사실만으로도 그 회사는 권위를 더가지게 될거라는 계산인지 모른다.
그러나 현주는 아무리 고급이라기로 기성회사에 고용인으로 들억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설계를 팔아먹는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된다손 치더라도 자유롭게 집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보다도 현주는 그럴 수 있다면 교단에 서는 것이 좋을듯 했다.
나오게될 무렵 Y교수와의 편지 연락으로 귀국후의 희망조건의 하나로 그런뜻을 써보낸 일이 있었고 Y교수는 어디 주선해보자고 한 일이 있었다.
현주는 이일 저일로 Y교수를 찾아보기로 했다.
학교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러지 않아도 연락할까 했는데』
그리고 곧 학교로 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현주는 택시를 모교로 몰았다. Y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갔더니 남자 학생이 둘이 있을뿐 Y교수는 자리에 없었다.
『아, 오시는군요. Y선생께서 잠깐 학장실에 가셨는데 곧 나오실겁니다.』
두 학생도 현주의 일은 알고 있는 모양, 공손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곧 오시겠지요?』
『예.』
둘중의 한 학생이 어리게 보였으나 단정하고 총명해 보이는 학생이 의자까지 가져다 권했다. 조금 앉아 있으려니 Y교수가 털털거리면서 들어왔다.
『아, 왔군.』
자신도 앉으면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에 웃음끼를 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