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小說(소설)의 主題(주제) 現代聖職者(현대성직자)의 갈등
聖職(성직) 포기할 處地(처지)에 촛점
司祭(사제)의 상투적 경건심 다뤄
T. 케닐리 「성신께 만세삼창」 R. 플린 「천주의 집에서」 등
최근 발표된 두 소설은 교회쇄신과 관계되고 동시에 교회기관 단체에 맡겨진 성직자의 내적 갈등을 추구하고 있다. 토마스 케닐리의 「성신께 만세삼창」은 주인공이 오스트랄리아의 신학교수 메이틀랜드 신부인데 그는 교회내에 옳지 못한 점이 많으나 교회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공인되지 않은 복음교회의 미국인 목사 패트 쉐헌 목사의 견해도 비슷하다. 그는 로버트 플린의 「천주의 집에서」의 주인공이다.
근래에 나온 몇개의 소설은 여러가지 이유로 서직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성직자의 딱한 처지에 촛점을 집중시켰었다.
그러므로 出口없는 사제문제가 다시한번 작가들의 관심을 끌게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활기를 느끼게 한다.
아마 덜고고하게 조직된 교회의 자유를 동경해온 가톨릭신자들은 쉐헌 목사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것이고 반면 더 큰 조직적 통일을 갈망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은 메이틀랜드 신부의 경험을 새로운 원기를 북돋아주는 강장제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 두 권의 책은 모두 평신자가 성직자 생활의 요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두 권 다 독자에게 고요하고 구식의미로 경건한 사제생활상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웃에 민감한 쉐헌 목사는 본당신자들의 상투적인 요구와 상투적인 성직자의 경건심에 자신이 휘말리는 엄청난 현실에 허덕인다.
그는 『예수는 구원한다』고 써넣은 회전하는 「네온」 십자가를 교회지붕에 꽂으려는 신자를 때려눕힌다.
쉐헌 목사와 신과의 대화 속에는 냉소적인 「위트」가 있다.
「천주의 집에서」의 마지막 장에서는 사회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모인 지방목사, 성직자, 학자의 「유모러스」한 견해를 다루고 있다.
메이틀랜드 신부는 벨기에서 수학한 후 고국으로 돌아와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교회 역사가이다.
그는 교수들중의 전통파들과의 개인적이고 지능적인 논쟁의 거미줄 속에 얽혀든다.
교구주교는 친절하고 관심있는 인물이나 신부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는 아이들로 여기는 부성적 친절의 소유자이다. 메이틀랜드 신부는 구라파에 있을때 가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품고있는 신의 개념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출판한다.
이것이 성공하여 본국에서도 읽게되자 전통파들은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보게된다.
그래서 주교와 신학교 「멤바」들은 이 책이 신문에서 논박돼야할 불충한 작품이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그렇다면 누가 그 교구의 역사학자인 메이틀랜드 신부 보다 그런 일에 더 적격이겠는가!
오스트랄리아의 신학생이었던 작자 케닐리씨는 몇몇 조역속에서 섬광과 같은 계시를 잡고 있다. 이 두 책은 그 속에 상당히 진정한 「유모어」가 들어있다.
패트릭 헌트 記
解答者 朴炳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