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歲暮(세모)풍경 등진 梨花村(이화촌) 주민들
크리스마스는 오는데…
기적에 가까운 延命(연명) 1年(년)
전체주민 40%가 노동능력 없는 者(자)
自立向(자립향)해 피맺힌 몸부림
協業(협업) 養豚場(양돈장) 설치가 최대의 소원
가는 해의 아쉬움과 오는 해의 희망이 벅차게 교차되는 세모(歲暮)의 거리에는 요란한 「징글·벨」 소리에 들뜬 발걸음이 포도(포道)를 메우며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세모의 거리 이면에는 즐거움을 잊은 채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가며 차거운 방안에서 떨고 있는 동포가 있다. 여기, 남의 의존에서 벗어나 꿋꿋이 자립해보겠다는 갸륵한 정성들이 모여 새삶을 이룩해보려고 발버둥치는 거룩한 생명의 집단이 있으니 이름하여 이화촌.
배꽃같이 더없이 순결하고 슬기롭게 살아보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이 마을은 대구의 서쪽끝 중리동산 130번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52채의 성냥갑같은 작은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이 마을엔 대낮인데도 골목에 사람의 그림자를 찾기 힘든다. 헐벗은 그들이기에 찬바람을 피해 모두들 방안에서 나오지를 못한다.
1968년 12월 30일 이들이 무의탁자 수용소인 대구시립희망원에서 분가, 자립에의 굳은 결심으로 이 마을에 집단이주한지 벌써 1년-.
남에게 도움만을 받아 오던 생활을 청산하고 그들의 운명을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척해보려는 큰 포부를 안고 이들은 힘찬 출발을 했던 것이다.
노동능력이 있는 남자들은 공사장으로 나가 밤늦도록 일했고 아녀자들은 공장의 공녀로, 떡장수로 또는 옥수수장수로 대구시의 골목골목을 헤맸다.
이들은 희망원 출신들이란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 52세대 298명 수용인원 중 4할에 가까운 인원이 불구·노약자(老弱者)들로서 활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시에서 이들을 위해 홀치기 기술자를 파견, 기술을 습득시켜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신체적인 장애 등으로 그것도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나마 지난여름 장마 때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시에서 이들에게 비상구호 대책으로 3일간의 식량을 지급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생각하면 기적이지요. 노동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나마 살아간다는 것이…』 이화촌자립개발위원회 吳泳俊(61) 회장의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 市에서 지급되는 영세민구호양곡은 단2세대에만 지급되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10가구에 30여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다. 신자들은 이들대로 따로 나란히 한곳에 모여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역시 다른 주민들과 같이 비참하기 그지없다. 비참한 생활가운데서도 이들은 주일이면 빠지지 않고 상리본당에서 가서 미사참예를 하고 있다.
대구대교구 성소지도 박병원(필립보) 신부가 이들의 딱한 실정을 듣고 이 이화촌을 돕기로 결심 주민들의 가옥 건립비로 70만원을 보조해 주었고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 보건소의 감정결과 음료수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정이 났다는 말을 듣고 이들에게 우물을 파주기로 약속 중리동 동장으로부터 5천원을 농협중리동 조합장으로부터 천원, 도합 7천원의 보조를 얻고 박 신부의 사비를 들여 착공했으나 거의 완성 직전에 노임을 지급치 못해 중단되어있다. 『날이 따뜻할 적에는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추위로 시내의 건축공사도 거의 중단되고 일할래야 일할 곳이 없으니 이 삼동을 지낼 일이 막연할 뿐』이라고 吳 회장은 한숨짓는다.
그러나 이 마을에도 살길은 있단다. 『지금 마을 앞에 있는 시가 10만원 정도되는 170평의 밭을 사서 흙벽돌로 공동 돈사를 지어 공동으로 양돈을 해 나간다면 이 마을에도 틀림없이 밝은 날이 오리라고 확신 합니다』라고 吳 회장은 힘주어 말한다.
협업양축장 같은 것을 설치, 공동관리로 양돈을 하면 몇해안에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들에겐 10만원은 커녕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서글픈 실정이다.
연탄이라고는 구경하기 힘들고 산에 나가 풀잎을 긁어다가 연기만 쐰 방안에 온기(溫氣)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찬방 안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홀치기 틀을 만지고 하루 30원 벌이가 된다는 성냥갑을 바르고 있다, 그 옆에서 보채는 어린것의 허약한 모습이 한없이 애처롭다. 돌아서 오는 길에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대구시가의 「네온」 불빛은 찬란하기만 하다. (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