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중순 마산교구의 한 부제(副祭)가 해수욕 갔다가 익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일꾼이 모자라는 우리교회가 또 한사람을 잃었다는 애석한 생각이 떠올랐으나 「태시기가」라는 책을 읽고 보니 참으로 우리교회에 꼭 필요하였던 예외적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치 않을 수 없었다.
이태식 부제는 이번에 32명의 새사제와 함께 서품되었어야 했으나 지난 8월 10일 29세의 청춘을 푸른바다에 실려 보냈다. 우리는 크리스찬의 죽음이 무의미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태식 부제도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본체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친우이며 동창인 부제들이 서품을 앞두고 급히 서둘러 세상에 내놓은 것이 「태시기가」이다. 여기에는 이(李) 부제의 편지·수필·시 등이 실려 있다. 편지라는 자체가 허식과 타산과 감춤이 없는 것인만큼 「태시기가」도 이 부제의 심혼 그대로를 노출해놓은 느낌이다. 그는 사제가 될 사람이지만 보다 인간적인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신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씌어진 것이나 현대의 교회상에 대해서도 반성의 재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으며 현대인의 신앙생활의 자세도 「태시기가」 속에 나타나 있다.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은총을 믿고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생활하는 그 자체 말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서 3일만에 부활하셨듯이 우리의 신앙도 모든 어려움 중에서 기쁨을 보존해나가는, 아니 기쁨을 전파하는 것이리야 한다. 이러한 십자가를 통한 기쁨을 우리는 「태시기가」를 통해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우기 이 부재의 재치와 「유모어」는 우리에게 신앙에서 받는 통쾌감과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태시기가」는 오늘날의 우리 신앙생활에 원기를 불어넣어 준다.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중 가장 중요한 것은 쇄신이다. 그러나 이 쇄신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 방향은 암중모색이다. 그런데 여기에 「태시기가」가 그 방향은 제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정신적 자세만을 암시해 주는 것 같다. 과거의 침체된 상태를 벗어나고 새로운 신앙생활, 즉 기쁨으로 찬 활기 띤 생활을 찾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부활한 그리스도를 사랑과 봉사, 선택과 자유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감히, 한국가톨릭교 신자는 누구나 다 한번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불행히도 이 책의 발간 부수가 한정되어 널리 보급되지 못한점 애석히 여기며 발행에 노고하신 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유가(有價)로 재판함으로써 경비를 충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재판할 때 조금 더 노력(努力)을 가해서 중복되는 것은 삭제하고 몇몇군데 오자를 제거함으로써 초판에서 서둔 점을 덜어주기 바란다.
가까운 장래에 재판되길 기대하고 또 주교·신부·신학생·수도자·평신자의 일독을 바란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