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49) 분수령 ⑮
발행일1969-12-21 [제698호, 4면]
『어떡함 좋지요?』
현주는 안타까운 듯이 인자함을 풍겨주는 김 신부에게 물었다.
『글쎄요.』
김 신부는 즐기는 담배 골통대를 뻑뻑빨고 나서 연기를 내뿜으면서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군요.』
천천히 말했다.
『간단하지 않음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현주가 더욱 안타깝게 물었다.
김 신부는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박군이 떠나기 전에 나한테 한 이야기가 있어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긴데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결혼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혼요? 벌써?』
『물론 당장한다는 게 아니고… 그 상대가 윤 선생이라는 겁니다.』
『예엣』
현주는 앗찔했다. 용신이가 전에 농담 진담삼아 말한 일이 있었고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못쓴다고 타일른 일도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용신이와 현주 자신 둘 사이에서 오고간 말이거니만 생각했는데 그것을 용신이가 김 신부에게까지 이야기 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현주는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겨우 정신을 도려잡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 그 애가 그런 말을?』
아무리 존경하고 이 앞에서면 못할 말이 없는 김 신부 일지라도 이것만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 박용신군이 분명히 말했읍니다. 윤 선생 없이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럴거라고 생각했죠. 어머니의 사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청년이거든요, 소질과 천분은 대단히 풍부해요, 음악에 대해서만 얘기하는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말입니다.
그런 소질과 천분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라면 앞으로 인간을 위해 천주님의 은총을 널리 베풀어 고난에 빠져있는 사람을 수없이 구원할 수 있을 겁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사랑속에서 자랐다면 문제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통 어머니의 사람은 모릅니다. 모성애에 메말라있는데다가 청년기에 접어들어 대한 분이 윤 선생입니다. 어머니인 동시에 청년으로서의 이성의 상대를 윤 선생 한사람 속에서 발견하고 그 애정속에서 지금까지 발휘하지 못했던 천분과 소질을 십분발휘한 것입니다. 음악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는 부드럽고 의젓하게 성장해 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외국에 간 것입니다. 외국은 국내에서와는 달라 모든게 서글프고 차갑습니다.
더욱 어머니이고 이성인 뜨거운 애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욕구대로 되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피우고 탈선행위를 한다면 그런데 원인이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김 신부는 설교조가 아니고 인생 상담자로서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용신이 심리상태와 의식세계를 파들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겠읍니까?』
김 신부의 말이 결코 용신이를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용신이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성으로 받아들이게 한 현주를 나무라는 투도 아님으로 현주는 마음이 풀리면서 물었다.
『그 사람의 천분과 소질을 그냥 완성시켜 쓸모있는 인간으로 만들 성의가 있다면…』
김 신부는 현주를 주시하면서 말했다.
『결혼하겠다고 승락을 하는 거죠.』
『예엣?』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용신이 있는 데로 가는 것도 좋겠지요.』
『예엣?』
두번 놀라고 현주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그건 안됩니다.』
잘라 말했다.
『왜요?』
김 신부가 되물었다.
『첫째로 연령차입니다. 십년 가까운 차이…』
채 말이 끝나기 전에 김 신부는
『그 다음은?』
재촉했다.
『이건 신부님한테는 처음 들려드리는 사연입니다마는… 용신이의 아버지가 십년전에 저에게 청혼한 일이 있읍니다.』
『그랬었오…? 그래서 승락한건 아니지요?』
『물론입니다. 거절했읍니다. 저 대신 지금의 부인과 재혼한 겁니다』
김 신부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윤 선생이 걱정하는건 그 두가지군요. 연령의 차와 용신이의 부친이 청혼한일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렇습니다』
『하하하』
김 신부는 소리내어 웃었다.
『신부님 웃으시네』
현주의 긴장된 마음이 풀리면서 자신도 웃었다.
『연령의 차는 약간 생각할 문제일지 몰라요. 그러나 그것도 윤 선생이 박군에 대한 애정과 관련되는 문제겠지요. 애정만 있다면 십년위인 남자와 십년아래의 여성의 결혼이 성립되는 것처럼 성립될 수 있을 거요. 그것은 불의(不義)도 아무것도 아니요. 처녀총각의 깨끗한 결합인 것이오. 오직 있다면 세속적 관습이지요. 그러나 그런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실컷 얘기하라고 하시오. 천주님에게 아무런 죄도 되지 않읍니다. 두번째의 아버지가 청혼했다는 사실 혼기의 처녀에겐 혼담이 들이닥치는 법이오. 마음에 들면 결혼이 성립되는 거구 그렇지 않으면 남남이 되는거 아닌가요?
윤 선생이 그 청혼을 처음부터 거절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래 또 무슨 불의(不義)가 되겠어요? 죄 하나도 없어요. 오직 있는 것은 사람들의 입방아뿐이오. 입방알 찧으라고 내버려 두시구려 그 방아간 참새떼 모양으로 조잘대는 사람들의 입때문에 거룩한 일이 훼방을 받아서는 안될것이오. 더구나 한사람의 천분과 소질이 좌절된대서야 말이 되나요? 그렇더라도 애정의 문제지요. 둘의 애정문제 요애정이 있다면 두분이 결혼한다 해도 또 외국에가서 윤 선생이 박군을 밀고나가 대성시켜준다 해도 그것은 천주님의 뜻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오. 아무죄도 없고 불의가 아니니까… 요컨댄 애정의 유무가 분수령이 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