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송이 검은 꽃 - 敎皇(교황)이 巡禮(순례)가는 우간다의 殉敎者(순교자)들 ③ 殘酷(잔혹)을 極(극)한 刑罰(형벌)도 잔치에 가듯 즐겁게
뼈마디마다 톱으로 썰고
가죽 벗겨 눈앞에서 태워
⑤「나무공고」에서의 火刑
6월 3일, 예수승천 일이었다. 1백여명의 집행관들이 얼굴에 붉은 진흙과 검정을 칠하고 머리에 깃털을 꽂고 목에 부적을 걸고 발굽에는 여러 개의 「벨」을 달아 뒤흔들면서 불을 피워 놓고 그 주위를 빙빙돌며 술과 춤으로 요란스레 밥을 새웠다.
신자들은 손을 목뒤로 하여 묶이었고 고통과 굶주림으로 지쳐있었으나 꼿꼿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침착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기쁨에 젖어있었다.
이때 집행장의 아들이라 하여 이들에게서 떼어내어 친척에게 보내졌던 므바가가 도망쳐 이들을 찾아와 다시 사형수 속에 끼어들었다.
『참 잘했다. 므바가, 너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광되게 했다.』고 소리치며 모두들 기뻐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집행관은
『마치 잔치에라도 가는 것 같군』하면서 비웃었다.
그들은 집행관들로부터 미신적인 의식을 거치고 화형대 앞에 이르자 『여기가 바로 우리들이 천주님을 대할 곳이구나』라고 말했다.
집행관들은 죄수들을 더 꽁꽁 묶고 갈대적으로 각 사람을 둘둘말아 화형대로 가져가면서 『너희들은 이제 불에 굽히게 되는데 천주가 구하러 오는가 꼴좀 보자』고 조롱했다.
이 조롱에 브루노가 재빨리 답했다.
『너희들이 우리 육신은 태울 수 있지만 너희들이 태울 수 없는 우리영혼은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이윽고 불길은 높이 치솟고 손에 칼을 든 집행관들은 전쟁노래를 부른 후 이들을 불길위에 던지자 이대번제는 끝이 났다.
집행장 무카양가는 자기의 아들 브바가를 살리기 위해 다시 설득해 보았으나 므바가는 끝내 굽히지 않고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여 한 집행관이 곤봉으로 때려죽인 후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⑥殉赦者 마티아·노아·루까
마티아는 우간다에서 멀리 떨어진 「키룸바」의 城主로서 오랫동안 간신들의 미움을 받아왔다.
「키룸바」에는 약간의 신자와 2백여명의 예비자가 있었는데 마티아는 그들의 교리 선생이며 아버지요 보호자였다. 마티아 다음으로 가장 유력한 신자는 루까와 노아였다.
이들 셋은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곧 체포되어 대신 앞에 끌려왔는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재판을 끝내고 대신은 『마티아는 팔다리를 끊고 등가죽을 벗겨 눈앞에 태우라』고 하고 『루까는 「나무공고」에서 처형하라』고 판결했다.
「캄팔라」에서 집행관들은 먼저 마티아의 손목을 끊어내고 다음에 팔꿈치부분 그다음에 다리를 차례로 끊었는데 뼈를 썰고 있는 동안 마티아는 한번도 신음소리를 발한적이 없으며 다만 『나의 천주여! 나의 천주여』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다음에 집행관이 그의 가슴과 어깨의 가죽을 벗겨 그의 눈앞에서 태우고 고통을 오래 가게하기 위해 동맥과 정맥을 한데 연결시켜 놓았다고 한다.
⑦마지막 殉敎者
이와 같은 상태로 사흘을 견딘 마티아는 그의 깨끗하고 고통스러운 일생과 그가 견딘 잔악한 고문 때문에 우간다의 순교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노아는 루까의 집문간에서 창에 맞아죽고 루까는 「나무공고」에서 시종들과 같은 최후를 마쳤다.
선교사들은 신자들이 자진해서 집행관에게 잡히는 걸 금해서 모두들 숨어 있었다.
이들 중 쟌은 무테사왕 시절에 시종으로 있었는 매우 똑똑하여 모두들 「고참」이라고 불렀다.
그는 선교사들과 함께 숨어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안 왕이 사신을 보내어 토지와 벼슬을 줄테니 나오라고 했다.
왕의 함정임을 알고 친구들이 극력 말렸으나 그는 『왕이 나를 죽인다면 나에게는 그보다 더 보람있는 일도 없다.』면서 왕 앞에 나아갔다.
왕은 더 많은 신자를 잡기 위해 친구들을 데려오면 약속한 땅과 벼슬을 주겠다고 하면서 그를 돌려보냈으나 혼자 돌아오자 대신의 집밖에 있는 흙탕못 속에 던져 죽였다.
므왕가왕은 이로써 우간다의 교회를 피로 익사시켰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찬의 씨에 물을 준 결과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