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시절의 한여름]「未知(미지)의 世界(세계)」로 향한 꿈……
「와이키키」해변은 더워 잠 못 이루고
드라이브로 지샌「스톡홀름」의 白夜(백야)
발행일1969-07-20 [제678호, 4면]
外國에나갈 機會는 자주있지만 주로 會議가 아니면 招請旅行이라서 자기의 스케쥴을 마음대로 재미있게 짜본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에뜨랑제」의 浪漫에 젖어 본다는 것은 아직은 하나의 사치스러운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데로 몇가지 추억에 남는 일들도 없지 않다. 時報社의 주문은 여름철이야기니까 우선 생각나는 것은 1963년 「스톡홀름」의 白夜이다.
IPI(국제신문인협회)總會가 6월말에 그곳에서 열렸다. 4일 동안 머물었는데, 綠度는 높지만 낮은 氣溫이 꾀 올라가서 「호텔」과 會議場인 市議事堂을 걸어서 往來하자면 땀으로 속옷이 젖을 정도지만 밤은 快適하다. 「리셉션」이니 「리너·파티」가 끝나면 의례 오랜만에 만난 몇몇 外國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들려 北歐名物의 마른생선안주와 맥주를 즐겼다.
하루밤은 10시경부터 音樂과 맥주를 즐기다가 아친 2시가까이 되었다. 옆에 앉았던 瑞典친구가 郊____드라이브하지 않겠느냐 ____하는 바람에 이밖 ____깜짝 놀랐다. 그 ____거리는 훤하니 밝지 않__ 우리나라의 요즘 季節의 저녁 7시, 그러니까 밖에서 신문도 읽을 수 있는 정도다. 運轉을 하는 그 친구얘기는 이대로 날이 샌다는 것이다.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30분정도 달리니까 벌써 울창한 숲이 욱어진 VISTA속에 고등학교 영어선생을 한다는 그 친구의 아파트가 보였다.
그 집에서 또 2차회가 벌어지고 「칼스버그」맥주를 드리켰다.
호텔에 돌아오니 오전 8시 간신히 샤와와 아침밥을 먹고 다시 會議장으로 직행했다.
작년 美國務省초청으로 우리내외가 7·8월 두달 동안 미국 각지를 여행했다. 「워싱턴」「뉴욕」「보스턴」을 거쳐 「시카고」「부루밍턴」「피닉스」 등을 돌고 羅城과 桑港을 두루 살폈으니 이제는 한숨 쉬자고 특별히 부탁해서 「하와이」에서 旅毒을 풀면서 3일간을 머물기로 했다. 「와이끼끼」海邊에서 시원한 해수욕을 즐기면서 피서氣分을 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고생만 죽도록 했다. 우선 一流 「호텔」이라고 정해준 「모아나」호텔에 들었는데 그렇게 흔해빠진 「룸·쿨러」가 없다. 당장 「프론트」에 물어봤더니 바닷가이기 때문에 冷房이되어있는 房은 몇개 없다는 것이다.
무더운 房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바로 「비취」에 나가서 海水洛을 했으니 물속에 있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房에 돌아와서 잠을 잘려니 도저히 더위 때문에 안된다. 하는 수 없이 窓을 다 열어놓고 보니 바로 길가가 되어 「틴·에이져」의 오트바이 소리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전쟁터와 같이 요란스러웠다.
다행히 아내는 피로에 지쳐서인지 얄미울 정도로 잘 자고 있다.
결국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그 이튿날 아침에 당장 봇짐을 싸고 海邊가에서 떨어진 2流호텔이지만 「에아·콘」이 있는 새로진 호텔로 이사를 했다.
「스톡홀름」의 여름밤은 낭만의 白夜를 드라이브한 즐거운 추억이, 그리고 「하와이」의 「休養」은 旅行의 고달픔을 느끼게 해주는 기억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뜻밖에 즐거움을 만날 때도 있고 너무 기대하다가 실망이 클 때가 있는 것처럼 外國旅行은 자주 갈수록 「未知의 世界」로 떠나는 心情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