刷新(쇄신)의 道程(도정) 平信徒使徒職(평신도사도직) ③ 使徒職(사도직)의 目的(목적)
敎會使命(교회사명) 福音傳播(복음전파)
使徒職遂行(사도직수행)은 사랑에서 나와야
市民生活(시민생활)도 크리스찬 精神(정신)으로
①평신도 사도직의 기초는?
②무엇이 사도직을 효과적이게 하는가?
③사도직의 목적은?
④사도직은 언제, 어디에서?
⑤개인과 공동체로서의 사도직
⑥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양성
그리스도의 사명은 단한가지이나 교령은 이 사명을 세가지 모양으로 나누고 있다.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인간구원을 목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 지체들의 사도직은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전해줌으로써 수행된다.(교령 6절)』
이것이 사도적의 기본적인 목적이다. 그리고 표양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교령은 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주께서는 바로 그들을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셨는데 지금까지 그분에 대해 확신적이고 절박한 이야기를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매일 얼마나 만나는가? 성 바오로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행하도다.(꼬린전 9·16)』『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재촉하는데(꼬린 후 5·14)』라고 말했다.
이러한 말들이 모든 신자들의 가슴에 메아리쳐야 한다고 공의회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그들이 나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우리에게 맡기신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전교를 위해 노력할 때 흔히 친구들을 『성당에 나가도록』 권유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는 않는지?
그러나 전교의 진정한 목적은 깊은 改心, 즉 한 인간의 온 생애가 그리스도에게로 돌려져, 그분의 행동과 생활관에로 변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덟가지 행복의 생활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에게 제공하는 행복에로 들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영세하도록 이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천주만이 개심시킬 수 있고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로서 우리를 사용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행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그분이 사용한다는 뜻이다. 즉 천주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행할까 그리고 무엇을 말할까를 가르쳐 주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신과 그 특은을 받았다. 우리가 더욱 더 끊임없는 기도로 성신께 열려져있으면 그는 우리가 친구들과 대자대녀를 성당에 데려오도록 도와줄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생명 즉 성장하는 생명에로 이끌도록 도와줄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구원성업은 본래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을 가졌지만 현세질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질서는 비록 서로 구별되지만 하느님의 한 계획 속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전우주를 그리스도안에 새로이 창조하실 계획이시며…(교로 5절)』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우리는 『자연과 초자연을 모두 그리스도안에 하나로 묶기(교령 7)』 위해 물질적인 것을 만지고 사용해야 한다. 『가정의 보화·문화·경제·예술과 직업·정치단체의 여러 기관들 국제관계 등등 또 그런 것들의 발전과 진보(교령 7)』를 위한 우리의 노력도 또한 그 목적으로 해야 한다.
많은 신자들의 생활이 종교적인면과 세속적인면 즉 아무런 연결도 없이 두 개의 간막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의회는 우리의 내적 일치를 주장했다. 『신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평신도는 이 두가지 질서에 있어서 동일한 그리스도교적 양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교령 5)』
예를들면 많은 사람들을 영세 준비시켜도 『남이 다 그렇게 하니까』하는 핑계로 식모월급을 충분히 주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뇌물을 받거나 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불편하다는 이유도 이 빛을 거절할지라도 우리의 사명은 복음의 빛을 사회에 전하는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나의 양심은 언제나 선의의 사람들의 노력에 협조하고 죄가 현세의 질서 속에 짜놓은 악을 대적하는 그리스도교적 양심이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 현세계의 건설이 천주왕국을 세우는 일부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깨달음에는 피해야 할 위험도 따른다. 평신도 사도직 대회에서는 왕국확장 방법으로써 발전을 위한 협조를 너무나 강조하여 직접적인 전교의 끊임없고 절박한 사명이 거의 무시되었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 주어진 신적 생명을 받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복음이 사람에게 전해지고 생활을 바꿀수록 복음의 빛은 사회적 진보 속에서 빛날 것이다.
세째 목적으로 교명은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을 지적해 준다. 『모든 사도직 수행이 사랑에서 시작되고 사랑에서 힘을 얻어야 하지만 어떤 활동은 본질적으로 생생하게 사랑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사랑의 표현을 주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메시아적 사명의 標識이기를 원하셨다.(마테 11·4~5) (교령 8)』
모든 인간 모든 필요에 손을 뻗치는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라는 표시이며 제일 확신시켜주는 표시이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의약·직업, 교육 등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빼앗긴 사람들, 가난과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 추방을 당하고 옥고를 겪는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그들을 찾아내어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교령 8절)』 그러한 사랑은 모든 그리스도교적 사도직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적 활동, 교회, 정부, 모든 선의의 사람의 사업의 뒷받침이 포함되어야 한다. 자선은 자기 자신의 위신을 드러내는 수단이어서는 안된다.
자선은 언제나 도움받는 사람의 자유와 품위를 존경해야 하며 그들을 독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의 입장에서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사랑의 선물처럼 주어서는(교령 8절)』 결코 안된다. 위의 세가지 조건은 반성을 하게 해준다. 남이 볼 때 더 풍부하게 주는가? 나의 도움을 받을 사람이 내 의견이나 충고를 거절하면 마음이 상하는가? 사실은 식모의 당연한 권리인데 마치 친절이나 베푸는 것처럼 휴가를 주는가? 다행하게도 천주의 자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해온 바로 그 사랑의 열의를 우리에게 주어 끊임없이 우리를 새롭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의 왕국건설로,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하나의 사명인 이 세가지 목적을 쫓아서, 성신이 믿어주는 힘으로 달려갈 수 있다. (계속)
梁 수산나(대구가톨릭여자기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