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㉒ 모세 時代(시대) ① 모세 時代(시대)의 史記(사기)
民族(민족)의 英雄(영웅) 모세
出(출)애급=叙事詩化(서사시화)·宗敎儀式化(종교의식화)
발행일1969-07-27 [제679호, 2면]
창세기 37~50장에 의하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이 형들의 질투의 희생이 되어 에집트로 팔려가서 종노릇하다가 파라오의 기이한 꿈을 풀어준 공으로 일약 재상이 되었고 흉년이 계속되던 어느해 그 형제들을 만나게 되어 아버지의 일가권속을 에집트의 「고센」 지방으로 이주시켰다고 했다. 앞에서도 몇번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이 전하고 있는 것은 「구세사」이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라고 일반역사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세사적 사건들도 그 시대 여러 민족의 다양한 세력권과 사회적 및 문화적 환경 안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곱 一族의 에집트 移住도 겹친 흉년으로 饑餓에 직면한 一團의 유목민의 移動을 구세사적으로 묘사한 종교史話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성경은 그 후의 사정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바로 모세시대의 이야기(출애급기)로 비약한다. 그동안에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출애급기 12·40에는 430년(창세기 15·13과 사도행전 7·6에는 400년) 만에 에집트에서 나왔다고 했으나 이러한 숫자들은 상징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에집트로 흘러들어간 경위가 역사적으로는 불투명하고 또 그 후의 長史는 아예 어둠의 「베일」에 가려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집트에서 초기에는 몰라도 후기에는 노예적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3세기의 어느 무렵 거기서 劇的으로 탈출해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인간집단으로서 처절한 生存鬪爭을 전개하였다. 이때 겪은 사건들 자체를 그들은 하느님의 啓示로 받아들였다.
이 해방투쟁에서 영웅적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카리스마」적 인물 모세였다. 모세 시대의 史記는 주로 야휘스트엘로히스트, 祭官系 등 세史料를 통해 전해지고 있으나 갖가지 문학유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관적인 歷史像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세가지 傳承은 그 독특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사람들의 에집트 탈출과 민족形成,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종교적 체험, 법률 및 종교祭禮의 제정 등을 오히려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구세사적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선정하신 이스라엘민족의 해방자요, 蓋世의 영도자요, 입법자인 모세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 만일 모세의 역사적 인간상 및 그의 실제적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역사, 야훼 종교에 대한 이스라엘백성의 충실성, 모세가 제정한 율법을 아낀 그들의 애착 등은 알아들을 수 없는 불가사의가 되고 만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이상 구세 사건들을 한갓 흘러간 과거사로 예사로이 전승한 것이 아니고 후대사회의 종교 생활 특히 종교 의식에 맞추어 출애급 당시의 사건들을 英雄 敍事詩化 내지 宗敎 儀式化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웅 서사시화 내지 종교의식화 했다고 해서 이스라엘백성이 전연 과거에 없던 사실을 조작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꾸라이에-예루살렘 성서, 출애급기 10항) 결론적으로 모세 시대 史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대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민족형성기를 구세사적 관점에서 회고하여 그 중요한 역사적 연대들을 비교적 충실히 서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사를 회고 서술할 때 무미건조한 연대표를 작성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구세사의 중대한 사건들을 중심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그들의 과거사는 축소되고 일정한 형식을 통해서 서술되었을뿐 아니라, 그들의 역사에 개입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분도출판사발행 구약성서입문 91면 이하 참조)
그러면 이스라엘사람들은 어떤 시대에 에집트에서 나왔을까?
기원전 16세기초엽 에집트인들은 「테베」王朝(第17王朝)의 영도하에 外來의 지배자 힉소스族을 몰아내려는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1580년경 上에집트의 王「악모시스」는 마침내 힉소스의 왕들을 구축하고 昔日의 영광을 회복했다.
그 餘勢를 몰아 第18王朝의 파라오들은 近東지방으로 돌진하였다. 「투트모시스 3세」 때에 에집트의 國威는 절정에 달하여 오리엔트 全域을 제압하였다. 그러나 다음 백년간은 다시 그 세력이 쇠퇴하였다. 특히 2백년 동안에 걸친 「헤티트」 帝國과의 「시리아」 쟁탈전은 결국 양국을 다아씨리아 세력에 휩쓸리우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第19王朝의 「람세스 2세(1292~1225)는 帝國의 광채를 회복하려는 최후의 노력을 하였고 第20王朝의 「람세스 3세」는 제국의 末路를 약간 연장시켰으나 그 후로는 神官들과 傭兵들의 專橫이 영구히 에집트를 국제적으로 再起不能하게 만들고 말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에집트에서 나온 시대를 前記 第19王朝의 「람세스 2세」의 시대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