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敎會(교회)에「回春(회춘)」을 가져다준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最後(최후)까지 公議會(공의회)만
마지막 알현 뷔신스키 卿(경)
▲5월 19일 주일 밤새껏 쉬고 아침에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했다. 시의 발도니 맛쏘니 두 교수가 진찰을 했다. 구미상실과 절식상태인데도 불구 코 병세는 호전되는 감이었다. 공의회를 위한 천상강복을 벌기위한 9일기도 내용과 묵상자료를 발표하시기전에 재검토 하셨다. 내일부터 다시 요한탑에로 가시어 곰곰히 사색하시겠다는 교황의 원의는 시의들을 당황케 했다. 오정 삼종기도 때에 「성베두로」 광장에는 군중이 꽉 차있었다. 교황의 기도소리는 아직도 낭랑하게 「멜로디칼」하게 울려 퍼졌다. 기도 끝에 오랫동안 애정에 가득한 인사를 했고 거듭 거듭 자기의 오른손을 입에 대었다. 다시 사랑하는 신자들에게 자부적 「키스」를 내려 보냈다.
오후에 이야기 가운데 요한탑을 수축 보전하게 된 연유를 상세하게 설명하시고 동조해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자기의 의견을 까르디니 추기경에 물어보았을 때 추기경은 『보존의 의무이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큰 공적이 될 것이며 후계들은 교황께 감사드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술회하셨다. 명명은 교황이 나신 「솟또 일몬때」성당 종각이 요한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월 20일 월요일. 라띤 예절은 오늘 「시에나」의 베르니디노 성인의 축일을 지낸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국무성 장관을 접견하셨다.
국무장관이 교황께 베르나이노 성인과 안또니오 그리고 라우렌시오 주스띠니아니 성인들에게 교회박사를 시호하고 그 날자를 11월 1일로 정하자고 건의했을 때 교황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시면서 『나는 절차를 밟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벌써 여러 차례 내 자신의 원의를 희생한 경험이 있읍니다. 그래야지 아무도 주대전에 실없이 자신에게 영광을 올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업적은 결과적으로 모두 주님의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메모」에 뷔신스키 추기경 알현 일정이 있었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무척 피곤해 졌으므로 측근이 『침실에서 추기경을 접견하시는 것이 좋겠읍니다. 그렇게 한다면 추기경께서 오히려 친밀감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자 교황께서는 『아적 그렇게 되지는 않았어. 그리고 설령 알현 중에 죽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하셨다. 자기의 마지막 알현이 되고 말았다. 교황께서는 「뽈로니아」백성에게 자기의 자부적 사랑을 나타내시고 모든 백성을 사랑할 수 있음을 말해 주었다. 추기경께서는 알현 후 9월에 다시 뵙겠읍니다 하자 교황께서는 미소 지으시면서 자기가 가장 행복한 순간의 토로처럼 『9월달에 나을지 그렇치 않으면 다른 교황을 보게 되겠지요. 한달 안으로 교황장례와 새 선출은 끝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거치장스러운 의전 절차만 없었으면 밑에 동문까지 배웅하고 싶습니다만』하셨다. 오후 언제나 처럼 하복부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욱 심하게 오래 계속되었다. 적절한 치료를 했으나 계속해서 다량은 아니었지만 내출혈이 있었다. 자기 측근자 중에는 델아꽈 주교도 있었는데 공의회 개회식 계획과 일차회기 후에 수정 정리할 사항들을 이야기 하셨다. 그리고 공의회 후에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자기의 소신을 말했다. (계속)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