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型(신형)의 黑人神父(흑인신부)
“自由主義(자유주의) 傾向(경향)띤 保守派(보수파)”
「아메리카 미사곡」-그레고리안聖歌(성가)와 흑인 靈歌(영가) 기초로 작곡
超宗派的(초종파적)「스티물리」조직 코 교육·음악·연극 보급
-유모어 感覺(감각)지닌 作曲(작곡)·聲樂(성악)·演劇(연극)·教育家(교육가)-
클래런스·리버스 신부는 1931년 9월 「알라바마」주의 「셀마」에서 태어나 가족들이 「신시내티」로 이사하자 그곳의 교구학교에서 교육받고 1956년 서품됐다.
그 후 「빠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석사학위를 받고 「사비오」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워싱턴」의 「가톨릭」대학에서 웅변과 「드라마」를 각각 연구하고, 10년 동안 「신시내티」 「가톨릭」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신시내티」주의 유일한 흑인신부이며 지난봄에 조직된 「흑인가톨릭성직자회」(BCCC)의 한 분과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운이 좋게도 예술적인 재능과 「유모어」감각을 겸비하여 극단 「여왕의 신하」를 조직하여 스스로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 그가 작곡한 노래를 가르치고 흑인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최신식 교육 「푸로」를 가지고 아메리카 전역을 순회할 계획이다.
그는 스스로를 「중재자」 또는「자유주의 경향을 띤 보수파」라 칭한다.
그가 처음 작곡한 「아메리카·미사곡」은 인쇄물이 16만부, 「레코드」가 5만부 이상 팔렸으며 1964년 세계박람회장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단순하고 부르기 쉬운 이 곡은 그레고리안 성가와 흑인영가를 기초로 해서 작곡된 것이다. 그는 발표하기전 2년 동안 이 노래를 「신시내티」와 「오하이오」의 여러 단체에 직접 가르쳐 보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의 비평가에 릭슨은 이 노래가 『품위가 있으면서도 가족적인 단순함』이 있다고 격찬했고 종파에 관계없이 미국 내에서 뿐만아니라 국외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 월남신부는 자기네들의 고유음악과 비슷한 데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부른다고 말했다.
2차 공의회전의 침울하던 교회음악을 기억하고 있는 신자들은 리버스 신부의 음악을 민속미사와 「재즈」미사를 향한 혁명의 시작쯤으로 여긴다.
올 11월 17일에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실내 합창단은 리버스 신부의 제2작품을 연주할 계획이다. 이곡은 1967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수천 청중에게 이미 첫선을 보였던 것인데 첫작품 보다 더 빈틈없으며 패기가 만만하다. 이 곡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있는데 재즈를 생명감있게 각색하고 거기에다 曾衆이 사용하는데 알맞도록 단순화시키고 「어필」하도록 처리했다.
『의식에서 모두가 한가지 음악만 사용하는데 질렸다. 재주만 있다면 「팔레스트리나나 바흐에다 민속음악이나 「재즈」를 서슴치 않고 집어넣겠다. 찬미는 교회의 공번성을 반영해야하고 인간은 변화를 필요로 하니까』라고 했다. 이러한 절충의 실험결과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생겨나왔다. 그는 「필요한 것을 이루었을 뿐이며 내 노래는 위대한 음악이 아니라 적당한 음악이다』라고 겸손해 하기도 한다. 그의 第3작은 「믿지 않을 信經」으로 전통적인 사도신경을 노래한 것이다. 그는 또한 「보나벤뚜라」 성가대의 초청독창자로 흑인영가를 「바리본」으로 불러 녹음해 놓은 것도 있다.
또한 텔레비와 영화에게 출연하고 있는데 연기자와 관람자사이의 전통적인 벽(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을 낮춤으로써 관중의 참여를 가능케 했다.
올가을쯤엔 비영리적이고 종파를 초월한 「스티물리」라는 단체를 이끌고 성인을 위한 음악·연극·교육 「프로」를 베풀 것인데 예능부문엔 직업적인 연기진을 다른 부문엔 사회과학자와 교사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이「스티물리」는 다른 어떤 직업적 혹은 비직업적 활동단체와도 달리 한가지 「프로」가 끝나면 연기자와 청중이 한자리에 모여 그 프로」에 대해 서로 생각하고 토의하게 된다. 한 마을이나 한 도시에 6개월 내지 일년씩 머물면서 학교나 교회에서 초청하면 응할 계획이며 이것이 성공하면 다른 국가적인 의식에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키에 정열적인 성격. 대답을 할땐 극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이 사이 웃음이 폭발하여 문장이 뚝뚝 끊어진다. 자신이 신부이고 흑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다고 말하는 리버스 신부는 지금 「드라마」와 통신기술에도 바짝 흥미를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