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31) 돌아와서 ⑤
발행일1969-07-27 [제679호, 4면]
『도착하는 날 영접나간다고 했었는데…』
박훈씨는 놀라고 반가운 심정을 억제하면서 고요히 말했다.
『Y 선생님에게서 들었어요. 안녕하셨어요?』
현주는 애써 침착해지면서 부드럽게 뇌었다.
『변하지 않았군.』
박훈씨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현주는 그 뜻을 모르는 대로
『뭘요.』
그저 불쑥 이렇게만 댓구했다.
『변하지 않았다기보다 더 예뻐졌다는게 정확한 표현이겠지마는…』
『아이참.』
그제야 그 말의 뜻을 알고 현주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것은 그 말의 감춘 뜻이 발음된 것과는 반대로 너 꽤 늙었구나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Y 교수가 현주의 심중을 아는 듯
『사실이지. 떠날 때에 비겨 더 야들야들해진 것만은 사실이니까…』
허허허 호탈하게 웃었다. 현주는 부끄럼을 지나쳐 와락 신경질이 도발됐다.
『선생님도 그러시기 얘요?』
저도 모르게 샐쭉해졌다.
『왜 그러지?』
현주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는걸 보고
Y교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올드·미스 됐다구 앞에 놓고 놀리지 마세요.』
현주는 이렇게 말해놓고 앗차 했다.
제 입으로 「올드·미스」라고 발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의식의 발로였다.
박훈씨나 Y 교수는 움찔했다. 결코 현주를 그렇다고 한말은 아니었다.
사실 현주는 8년전 보다 숙성은 했으나 그러나 역시 외국에서 생활했던 탓으로 연령만큼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견한 심정을 곁들여 뇌었던 농담이었다.
(역시 나일 먹었군!)
Y 교수와 박훈씨가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주는 이내 자신의 순간적인 심리의 움직임을 뉘우치고 배시시 웃었다.
박훈씨는 그 후부터는 주의하는 모양 현주의 신경을 건드릴 말은 하지 않고 원숙하고 능난한 화제로 현주를 즐겁게 해주었다.
현주는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처음만났을 때를 회상하고 그 후 몇차례 둘이서만이 가졌던 시간을 그윽하고 아름다운 심정으로 되삭이면서
(그때에도 우스개를 잘했고 소탈한 편이었으나 그동안 더 명랑해지고 부드러워졌네.)
박훈씨의 원숙해진 인간에 저도 모르게 끄을렸다.
(지금 어떻게 지내는가?)
결혼 말이다. 그걸 물어도 실례가 될 것도 없겠으나 마음의 비밀을 숨김없이 폭로 고백하는 것 같애 잠자고 있었다.
박훈씨는 팔목시계를 보더니
『자 강의가 있어서…』
일어서더니
『다시 연락하겠지마는… 쉬한번 집에 모시겠읍니다. 저녁이라도 함께 하면서 천천히 얘기도 나누기로 하고…』
현주에게 말하고 나가버렸다.
현주는 이내 Y 교수 방에서 나와 버렸다. 다음 주일, 수요일 오후, 현주는 Y 교수가 미리 말한 대로 모교의 출신과에서 특강을 하게 됐다.
건축과라고는 하나 과에 적을 두고 있는 학생을 상대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과학회가 주최가 되어 일반 공개강연의 형식을 취했다. 시간이 되어 현주는 Y 교수의 연구실에서 기다리다가 강당으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강당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 TV, 라디오, 주간지에 떠들어댄 효과를 이런데서보는 모양인가? 전공이 아닌 학생들이 오히려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문계통 특히 문학·예술방면의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내건 제목이 <최근의 구미의 건축예술>이라는데 끌린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
현주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흐뭇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8년간의 외유가 헛되지 않았다고 한순간 보람이 느껴졌다.
「매스·메디아」의 위력이 이 나라에서도 굉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상기되었다. 상기된 대로 Y 교수의 소개를 받고 박수 속에 단에 올랐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는 비전문적인 대중이 많이 낀 청중에겐 맞지 않는다. 현주는 쉽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미 각국에 돌아다니면서 본 이상한 건축물들, 웅장하고 감명이 깊은 건축물과 그것에 관련된 일화 같은 것을 나긋나긋하게 들려주면서 결혼으로 우주시대의 건축에 대한 과학자와 건축가가 가지는 미래상을 전망하는 것으로 끝마치기로 했다.
현주는 Y 교수의 화술을 모교에서의 표본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미국에서 참 재미있게 강의한다고 감탄했던 올리비 박사의 강의태도를 상기하면서 차곡차곡 익살과 윗트를 섞어 이야기했다. 청중이 때로는 웃기도하고 때로는 박수도 보내주었다.
복강은 우선 대성공이었다.
Y 교수 연구실에 돌아오니 함께 방에 들어선 Y 교수가
『윤 선생 거 어느 사이에 그렇게 명강의를 하게 됐소.』
악수를 청하면서 기뻐했다.
『뭘요? 실수나 없었는지요.』
『실수라니 감탄하고 안심했오.』
그러는데 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들어왔다.
『윤 선생님 고맙습니다.』
공손히 인사하는 한 학생은 전에 Y 교수를 찾아왔을 때 이 방에 있던 두 학생 중의 한사람이었다. 다른 한 학생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학생들이 퍽 재미있게 들었다고 합니다.』
처음 대하는 학생은 과학회의 간부인 듯 그래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고맙소.』
『또 쉬한번더 아니 자주 좋은 말씀 들려주세요.』
학생들은 나가버렸다. 현주는 처음에 인사하던 학생이 퍽으나 인상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