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17) 개혁(改革)의 전야(前夜)
발행일1961-02-05 [제265호, 4면]
이제 <데레사>의 기쁨이 극도에 다달았다. 그의 초자연적 사랑은 기쁨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 사랑에 완전히 들려버렸다. 장차 종횡무진(縱橫無盡)한 행동의 힘센 지렛대가 될 고요한 명상에 잠기고자 독처(獨處)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었다. 부친이 별세한 후 오라비들이 해외로 가버렸으니 그가 이제 집안의 어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마리아> 언니의 남편 <구쓰만>이 제기한 재산상속 문제의 소송에서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어야 했었다. 그리고 <안토니오> <페드로> <아우구스틴>이 해외로 가는 여비조달로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맨 끝동생 <후아나>의 양육 책임도 그가 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어린 <후아나>를 자기 수방으로 대려다가 一五五三년에 결혼할때까지 돌보았다. 그가 일단 끊어버렸던 이러한 속사(俗事)를 자주 일어나는 현상목도(顯相目睹) 가운데서 겪어야 했다.
一五六○년 말경에 그는 자기 건강이 좋지 못했음도 불구하고 조금도 개의(介意)치 않았고 오히려 기개(氣槪)가 왕성했다. 그뿐 아니라 <다싸> <아란다> <이바네스>는 물론 의심하던 <살세도>까지도 그의 편을 들었다. 「알칸타라」의 <페드로>는 여전히 그의 친구였고 「보르지아」의 <프란치스코>는 그를 찬양했다. 「예수회」 「도밍고회」 「프란치스코회」에서도 다같이 그를 존경했다. 그리고 <기오마르> 부인은 언제나 다름없이 항상 그에게 충실했다. 「강신」수녀원 안의 적의(敵意)도 사라지자 의심하던 수녀들이 사과했다.
그리고 四十명 이상의 수녀들이 그의 기도법을 따랐고 그의 덕행을 본받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를 따르는 수녀들에게 초자연적 은총을 바라기 보다 오히려 순명과 자기망각(自己妄却)이 천상 영복을 얻기에 보다 쉬운 길임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원래 엄격하던 청규(淸規)가 완화(緩化)되어 고독한 독신여성들의 피난처가 되다싶이한 이 수녀원은 시끄럽기가 장터나 다름이 없을만큼 속화(俗化)되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회헌(會憲)을 준수하려는 소수의 수녀들에게 큰 방해가 아니될 수 없었다.
다행히 <데레사>의 수방은 몸체에서 훨씬 떨어진 독체였다. 아랫청이 기도실이었고 웃청이 침실이었으나 낮에도 거처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수녀들을 그방에 맞아들였다.
하루는 <데레사>가 방석 위에서 수를 놓고 있을때 가장 친밀한 친구들이 둘러 앉아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그의 사촌인 「파티아」의 <아나>와 <이네스>, 그에게 충실한 <후아나 수아레쓰>, 그가 특별히 사랑하는 「오캄포」 의 <레오노라>와 <마리아>는 <데레사>가 말하는 <엘리아> 선지자와 「사막의 조사(祖師)」들의 이야기에 정신이 쏠렸다.
『영원자(永遠者)께서 대풍(大風) 속에도 지동(地動)에도 불꽃 속에도 계시지 않았고 오직 고요하고 낮은 소리 속에서 계시어 <엘리아>에게 말씀을 하셨다는데……』 그때 휴양장소로 쓰이는 가운데 뜰에서 피리와 탐보린에 맞추어 불으는 최신 유행가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그러한 고요하고 낮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 수녀원에서는 생활하기가 어려워 식구가 너무 많고……』
『어른들 자신도 속세에서 완전히 물러나기가 불가능해요.』
수녀원 어른들이 <데레사>를 「아빌라」의 귀족집으로 자주 보내어 오래 머물게 했었다. 세속 사람들의 청을 감히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응접실의 방문객도 번거러웠다.
『그러시다면 여기 있는 우리가 다 나가버립시다! 그래서 독수자(獨修者)들이 하듯이 우리도 독처 생활을 마련해봅시다.』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오캄포」의 <마리아>였다.
<데레사>는 눈을 들어 젊은 종질녀(從女)를 이윽히 바라보다가 눈을 다시 자기 수(繡)로 내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그리고 천주께 감사했다. 十七세인 <마리아>는 <데레사>가 三十년전에 「성총의 모후」 수녀원에서 지나듯이 속인 기숙생이었다. 아직도 사치를 좋아하고 기사담(騎士談)을 탐독하는 이 소녀가 그렇게 갑자기 발심(發心)할 줄이야! <마리아>는 종고모에게 자기 결심을 호소했다.
『딴 수녀원을 창립합시다. 우리가 이제 이야기한 그대로! 내 재산으로 아주머니를 도아드릴께요.』 그 소녀에게는 자기 집안에서 상속받을 몫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튿날 <데레사>가 <기오바르> 부인에게 가서 그 농담을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어제 젊은이들이 기운이 나서 「선족(跣足) 프란치스칸」식을 따라 조고만한 수녀원을 창립하자고들 계획을 세우면서 우수워했답니다.』
<기오마르> 부인은 그 계획을 농담으로 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다.
『창립하세요. 내가 도와 드리지요.』
<데레사>는 행할 각오가 된 순간에 자기 의욕을 행동 속에 풍덕 빠트리는 성격이었고 기회를 절대로 노치지 않았다.
이전에 그처럼 겁이 많던 그가 이제는 마귀도 쫓을만큼 놀라운 용기가 있었다. 그는 세심증(細心症)이란 전연 있을 수 없었고 극히 솔직하게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성격이었으나 언제나 균형(均衡)을 잃지 않았다. 「카스틸랴」사람인 그는 현실주의자였으나 초자연법을 순종하는데 행복을 느꼈다. 『일체가 허무하다』는 일체의 부정적인 표현이 『천주가 일체다』라는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표현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만이 그러한 계획의 실천이 얼마나 곤난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동시에 한번 『결심』한 다음에는 어떠한 반대라도 자기를 뒤로 물리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나의 취미에 꼭 맞도록 꾸며놓은 이 수방을, 오래 살면서 정든 이집을 어떻게 버리고 나간단 말인가!』
그는 그처럼 기분 좋은 환경을 버리기가 따분했으나 만사를 천주의 손에 맡길 결심을 더욱 굳게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