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디오」를 앞에 놓고 앉았다. 이 「라디오」는 내 아우가 송별기념으로 사준 것이다. 옥의 「안테나」를 달아놓고 나는 각가지 전파를 골라 소리를 조정하며 새로운 방송을 찾아왔다. 「일본」「미국」「호주」「구라파」 그리고 「모스코」와 「북경」 등등, 모든 사람이 여기서 제멋대로 뇌까리고 있다. -세계가 얼마나 적으냐! 또 현대인이란 얼마나 소란하냐! -어떤 전파에는 「콩고」에서는 불구대천의 종족상쟁이 벌어저 「유엔」 군부대가 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현지보도가 걸려든다. -나는 「다이얄」을 바른편으로 돌린다- 『콩고에서는 국민의 제국주의 군대가 원주민의 가련한 종족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아 유혈극을 야기하고 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내 「라디오」는 겁도 없이 전해 주다니! 이건 너무 과하다. 다음 전파를, 바꿔라! 진실만이 평화를 주느니 이런 허위 선전이 어찌 평화를 주랴.-
七년전 일이다. 나는 북한 땅에서 일간신문들을 읽었다. 노동자, 농민에 대한 찬양, 성과와 건설에 대한 찬양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 경의를 표했다. 우리 「비공산당」들은 비판이 너무 많고 또 다른 사람들의 착한 일은 무시하기 일수인데. -저기서는 정치, 경제에 관한 논문들이 천편일률로 당의 「하나」의 「이데올로기」 달성이란 노선을 지키고 있었다. 거기서는 또한 간행물이 통제되어 있으니깐. 집산주의의 노골적인 권력은 조직상의 개별적 분석에 여지를 주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부족한 것이 그 반대로 남한에는 너무 많다. 만일 사람마다 자기 의견만 고집하게 들면, 어디 「민주」주의가 있겠는가?
가톨릭 출판물 보급주일을 당하여 독자들에게 나의 소원을 소개할 수 있다면 다음 몇 가지를 들어야 하겠다.
(一) 가톨릭신자들을 위한 방송국은 당분간 실현성이 있을 것 같지 않다.
(二) 무엇보다도 소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가톨릭신문」은 어떤 사건을 기록하기만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은 의의를 쓰고 풀이를 해야하는 것이다. 사건자체는 무색이다. 공산당들은 그것을 「새빨갛게」 만든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교적」으로 만들며, 천주님의 작용하심과 그 은총이 이루워저 하나도 놓칠 것이 없음을 우리가 보여 준다. 우리는 종종 비판적이며 신덕이 약하여 천주님을 욕되게 하는 역사의 현재의 사건들이 그리스도교적 신앙전파에 대항하는 반항 「모멘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재 발전은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출판물을 간행한다는 것은 한국민을 위하여 하나의 이상적인 활동분야가 되어 지리라.
여기에 관한 교황 <비오> 十二세의 말씀을 다시 적어보면, 『가톨릭 출판물들은 대중과 또 헛된 민중적인 저속한 흥미에서 그 무가치한 것은 단연코 포기함이 가하리라. 가톨릭 간행물은 결정적이며 자랑스러운 권위로써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부패케 하려는 모든 시도에 감연히 대항하며… 또 용기를 고무하여 신앙과 도덕을 모독하는 어떤 보도라도 또 어떤 출판물일지라도 가차없이 격퇴함이 가하리라』고 했었다.
(三) 서적 간행의 방법을 통한 종합적인 신앙보도란 의미에서 문서전교는 왜관에 신설된 우리 「성 분도회」수도원 출판부에 과해진 사명이다. 한국에 있어서의 종교적 부족을 이 출판부가 도우려는 것이다. -교리, 예전, 묵상 서적 및 소책자 등 신앙문제 하나하나에 관한 호교적인 소선전서들이 해를 거듭하는 동안에 출판될 수 있기를 우리는 희망하는 바이다. 목표하는 바는, 순수한 종교적 내용, 흥미로운 형식, 대량생산에 의한 염가 등으로 되어있다.
(四) 독자에게 보내는 소원.
(ㄱ)가톨릭 신잡지를 받으라. 읽고 또 대금도 지불하라.
(ㄴ)자기가 읽은 후는 불에 넣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 읽게 하라.
(ㄷ)그때그때의 문제를 영혼을 지도해주는 분과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토론하라. 상방이 다 풍부해지리라.
(ㄹ)문제가 있으면 지상을 이용하고 또 가톨릭 출판물의 행동적인 독신원이 되라.
(ㅁ)가능하면 광고는 가톨릭 신문잡지에 내라.
(ㅂ)출판사업에 골몰하며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가톨릭신문인들을 위하여 도처에서 기구하라. 그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종교적인 활기를 얻기 위하여.
이소沈 신부(聖분도회博士修士神父 前韓國中立監視委瑞典代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