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지방 - 성서를 읽는 가정이 되도록
오늘날의 기술적 진보의 위기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교훈과 성사를 더 자주 받음으로써 각 가정을 강화하기 위하여.
많은 가정을 실지로 관찰하건대 자기들의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권위가 없기 때문에, 가정에 그리스도의 교훈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의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사제적 책임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이 중대한 위험에 빠졌었다. 사회의 기술적 진보가 가정생활을 형식화하여 정신력(精神力) 및 도덕력(道德力)의 상실을 초래한다. 이러한 모든 위험에 대한 대책으로 그리스도의 교훈과 성사를 자주 영함이 가장 필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가정 안에 그리스도의 교훈이 있는가? 부친이나 모친이 자기들의 자녀들에게 신덕 도리를 가르치는가? 가족들이 가정에서 날마다 성경을 읽고 또 성경 이야기를 하는가?
가정 마다 가톨릭 잡지를 읽는가? 아니라는 대답에 우리는 다 부끄럽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기들의 자녀들을 신앙생활로 기도와 성사의 실천생활로 인도함이 부모의 사제적 책임이다. 그리고 혼배성사가 서로 성덕(聖德)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부부의 강복과 의무를 준다는 것을 언제나 교회 안에서 생각해 왔다. 성사생활과 성경의 매일 묵상은 가정과 또 각 가정을 통하여 전 사회를 위하여 정신적 건강의 메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 일반의향 - 신학생이 여러 문제에 정통하도록
전 교구에서 다수의 방인 성직자를 양성 할 오늘날의 기본적 필요성을 위하여.
一九六○년에 「로오마」의 「포교성성」이 아아(亞阿) 각국의 소신학생 二만五천명과 대신학생 五천四백명의 교육을 위해 六천二백만「달라」를 소비했다.
그 얼마나 굉장한 액수인가마는 사제성소의 격증(激增) 때문에 시급히 요청되는 신학교 신설(新設)을 위하여 필요한 경제원조에 충당하기에는 그것도 충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신학교의 증감(增減)은 우리 영성생활의 사활(死活) 문제다. 우리 사제가 양성되는 신학교로부터 모든 사제적 강북과 모든 성사적 생활이 유래(由來)한다.
그러므로 우리 신학교의 유지는 물론 확장 및 신설의 노력을 위해서도 모든 신자들의 더욱 효과 있는 원조를 재촉하여야 한다. 우리가 신학교 건설을 도움은 우리 자신이 받는 강복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 신학생들이 활달(豁達)한 정신을 지니도록,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에 관하여 정통하도록, 교회 전체의 설정(實情)에 관한 위대한 지식이라고도 생각하는 공번된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도록 교육되기를 기구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요안> 교황성하께서 그의 위대한 전교에 관한 회칙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사랑 위에 천주의 교회가 창립되었으며 이 사랑으로 인하여 교회가 진실로 「공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부르크」 및 「에쎈」과 같은 「구라파』의 일부 교구에서는 그곳 주교들이 자기들의 신학생들이 노동자들과 개인적으로 적접 접촉함으로써 노동문제에 관한 명백한 사상을 얻기 위하여 방학기간을 공장에 가서 노동하면서 지내기를 촉구하고 있다. 「인스부르크」의 <루쉬> 주교가 말하기를 오로지 그러한 방법으로 사제들이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계급을 이해하고 지도할 수 있게 되리라고 하였다.
최고 부귀를 대함과 마찬가지로 최하빈천을 대하는 그러한 사랑, 우리 신학생들의 그러한 사랑이 성인다운 사제들 즉 전 국민을 위한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을 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