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20) 동정양극(動靜兩極)의 연결
발행일1961-02-26 [제268호, 4면]
<데레사>의 머리와 몸이 온 종일 분주한데다가 짧은 틈틈에 쉴 수도 없었고 밤중에 온 잠을 잘 수도 없었음은 <이바네쓰> 신부에게 대한 순명 때문이었다. 그는 자서전을 쓰고 있었다. 약동(躍動)하는 표현, 다채(多彩)로운 필치의 성격묘사, 균형이 잡힌 문장, 사실적(寫實的)으로 육박하는 장면 거리낌이 없는 천성에 타고난 글재조. 활동이 제지(制止)된 당분간, 자기의 과거를 회상하여 기록하기가 그에게 위안이 되었으나 『나의 대죄와 추악성』을 자세히 기록할 수 없음이 마음에 거리꼈다. 그것도 역시 고해신부의 명령이었다.
『천주의 부르심을 받고난 뒤로 성인들은 다시는 더 천주를 거스리지 아니하였으나 나는 그전 보다 더 나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존께서 나에게 내려주시는 은총을 물리치려고 결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처럼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주신 천주는 영원히 복되실 지어다……』
스스로 『나의 위대한 책』 『천주 자비의 서적』이라고 일컫는 이수기(手記)는 남자나 여자나 지상적(地上的) 환멸로부터 영성적 현실로 한발 한발 딛고 올라가는 심도(心禱)의 길을 잡아주는 가장 정확하고 명백하게 그려놓은 안내지도이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체험을 <데레사>가 최초로 해설한 것은 실로 그가 동적생활(動的生活)을 막 시작하려는 때였다. 천주의 간단없는 임재(臨在)가 동정양극(動靜兩極)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이바네쓰> 신부는 <데레사>가 하루에 서너시간을 심도에 쓰고 나머지 시간을 다른 일에 쓰는 줄로 살았으나 그는 어느 때나 어느 곳으로나 천주를 모시고 다녔다.
서너살 난 생질 <곤쌀로>가 죽었을 때 그가 베일을 내려 덮은 자기 얼굴을 죽은 그 아이에게 가까이 대고 속으로 천주를 불렀다. 한참 있다가 그 아이가 잠을 깨듯이 다시 살아난 일이 있었다. 그 후에 <후아나>가 <곤쌀로>의 아우를 낳았을 때 하루는 <데레사>가 그 갓난아이를 꼭 끼어 안더니 이상한 자장가를 중얼거렸다.
『아가 아가 네가 만일. 착한 어른 못될거면. 아가 아가 나의 천사. 죄짓기 전 바로 이때. 천주님이 데려가소』
三주간후에 임종한 그 아이를 <데레사>가 자기 무릎 위에 눕히고 자기 베일로 가려 덮었다. 그는 얼굴이 빛나면서 탈혼상태에 들어갔다.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황홀상태에서 정상적으로 돌아온 <데레사>가 숨고 지운 그 갓난이를 안고 고요히 일이서더니 따둑거리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언니 언니 어딜 가는 거요? 아이가 죽었단 말도 하지 않고?』
환희와 경이(驚異)에 빛나는 얼굴로 돌아보면서 그는 놀라는 <후아나>에게 말했다.
『천주께 함께 감사를 바치자. 이 어린 영혼의 승천을 우리가 보았으니. 천사들의 주인께서 이 아이를 데리려 오셨으니……』
그 당시 그는 조용한 가운데 있고 싶어서 가끔 <기오마르> 부인댁으로 가서 오랫동안 머물었다. 돈이 생기는 데로 역사가 조금씩 진섭했다. 시급히 필요한 것이 있어도 돈이 없어 감히 주문을 못했다. 착한 도목수 <요셉> 성인이 나타나 돈한푼 없이 목수들을 불러오라고 그에게 명령했다. 이상하게도 뜻밖의 돈이 왔다. 해외에서 「정복자」(征復者)로서 성공하여 부혼(富婚)한 그의 오라비 <로렌죠>가 보낸 것이었다. 놀란 것은 목수품값이 넉넉할 뿐 아니라 시급히 쓸데가 생긴 액수의 돈이 보태져 있는 사실이었다. 만사가 잘 되어 가던 중 그가 문득 그 일터를 떠나야 할 일이 돌발했다. 오라비에게 천주의 안배를 찬양하는 답장을 써 보낸 이튿날인 그해 성탄날 밤에 「강신」 수녀원장의 전갈이 <기오마르> 부인에게 왔다. <데레사>를 곧 「톨레도」로 떠나보내라는 명령이었다. 가면 몇 달이 걸려 둘아오게 될런지?
<데레사>의 일행은 一五六三년 정초에 「카스틸랴」의 평원을 횡단하는 긴 여행을 떠났다. 「가다라마」산맥에서 숨결같이 불어오는 바람은 촛불은 못꺼도 사람의 몸퉁이를 꽁꽁 얼어 붙일 만큼 맵고 시렸다. 제부 <후안 테오발레>와 충성스러운 <수아레쓰>가 그를 동반하여 여러날 길고생을 나누었다. 그들은 마침내 「비사그라」문으로 「톨레도」의 성내에 들어섰다. <필립> 二세가 「마드리드」로 천도한 후에도 귀족고가(古家)들이 「톨레도」를 떠나지 않아 화려한 옛날 왕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았을 뿐더러 국내산물의 집산은 물론 「구라파」 각국과의 무역도 여전히 이곳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번화하기도 대단했다. 이러한 대도시의 풍경을 처음으로 대하는 <데레사>의 약간 튀어나온 눈이 이런 새 세계를 세밀히 관찰하기에 바빴다. 이곳이 또한 <데레사> 집안의 반상지지(發祥之地)이기 때문에 그의 선친 <알론소>를 「아빌라」 사람들이 「톨레도」 양반이라고 부르던 일이 생각났다. 그의 명랑한 성격으로 또 그의 날카로운 센스로, 『세련된 말씨』와 그 지방 명산인 잘드는 칼날로도 이름난 이 대도시의 분위기가 그의 비위에 아니 맞을 수 없었다.
그가 뜻 밖에 이곳에 오게된 것은 一년 전에 상부(喪夫)한 이래 상심(傷心)한 나머지 성병(成病)한 「카스릴랴」 총독의 미망인 <루이사> 부인이 <데레사>의 성덕(聖德)을 듣고 「강신 수녀원장에게 그를 부디 보내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이었다. 「아빌라」 이외의 다른 지방에서 높아지는 자기의 명망이 그에게는 도리어 『내적 혼란』을 일으켰을 따름이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기 번민을 오주께 호소했던 것이다.
『…… 이처럼 추악 저를……』
『그곳으로 가거라. 수녀원으로 말하면 허가장이 올 때까지 네가 어디든지 가있는 것이 요긴하다.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그곳에서 내가 너를 도우리라.』
그의 시끄러운 마음을 진정 시킨 것도 그 어른의 말씀이었고 그가 역사(役事)의 거정을 잊어버리고 떠난 것도 사실은 그 어른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었다.
「칼라트라바」궁(宮) 앞에서 그들은 나귀등에서 내렸다. 여기가 바로 <메디나쎌리> 공작의 둘째딸이오. 고(故) <아리아스 파르도> 총독의 과부가 애통으로 다 죽어가면서 왕후(王侯)의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