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믈다섯살드는 一九○五년 六월에 사제의 품을 받은 그 젊은이는 『주여 나에게 영혼들을 주소서!』하고 외치던 성 <프란치스꼬·사베리오>의 뒤를 따라 수륙(水陸) 수만리의 먼나라 한국!
앞서간 선배들의 목숨을 바친 붉은피자욱이 아직 마르지 않았던 한국을 향하여 영웅적인 기상으로 고국산천을 이별한 이래 반세기(半世紀)가 훨씬넘는 五十六년이란 세월동안 『한국 땅의 흙이 되겠다』는 그 결심은 한번도 고국을 다니러 간적도 없다.
○…一九五○년 六·二五때 호남(湖南)지방 일대로 침입한 공산괴뢰군도 이 성인 같은 할아버지에게는 잡아갈 죄목을 만들지 못하여 어물어물하다가 잡으러온 자들이 오히려 감화를 받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땅을 밟게된 그이는 처음 九년 동안 전주(全州) 금산(錦山) 논산(論山) 대전(大田) 등지에서 『사람을 낙는 어부(漁夫)』로서의 젊은 열정을 쏟았으며 一九十四년 경남 「마산포」(馬山浦) 본당신부로 선임되어 오늘날의 밀양, 삼낭진, 진영, 함안, 창영 등 여러 본당의 터전을 마련하는 한편 완월동(玩月洞)에 화강석(花岡石)으로 아담한 석조(石造) 성당과 벽돌집 사제관 및 성지(聖旨) 학교교사를 마련하였다.
○…식물학(植物學)에 대한 조예 깊은 솜씨로 동백나무 모과나무 지자나무 산다(山茶)나무 월계수(月桂樹) 매화(振花) 등등 一년 四시절 연이어 꽃피는 향기 그윽한 꽃동산을 이루어 놓은 그 꽃나무들은 지금 고목(古木)이 되고 있는데 그는 이 무학산(舞鶴山) 중허리에서 마산포바다를 내려다보며 춘풍추우(春風秋雨) 三十년을 보내는 동안 자애 깊은 어머니 같은 인정은 많은 신부님으로서 우리풍속을 깊이 이해하고 그 자신 몸소 젖으려 애썼으며 여러 가지 식물로 손수 만든 산약(山藥)은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 사이에도 병에 잘 듣는다고 이름이 높았으며 일흔살이 가까운 늙은 몸으로서도 약十리길이되는 『국립결핵요양소』까지 매주일 탈것도 없이 걸어서 환자들에게 성체를 뫼서다 영해주기를 궐하지 않으셨던 착한목자!
○…一九四八년 대전(大田)교구의 설정과 함께 강경(江景)에 본당을 신설한 피로할 줄 모르는 八十一세의 전교의 노장(老將)은 三十대에 가졌던 정열을 그대로 전교활동에 쏟아 훌륭한 새성당을 신축하게 되었으며 영혼의 병을 고치는 일과 이 나라 백성의 마음에 천주성신의 궁전을 짓기에 여념(餘念)이 없다.
○…세속의 눈이 볼 때 평범한 五十六년의 성직생활 그러나 『천주의 사절(使節)』로서 세상의 죄악에 대한 천주의 진노의 피뢰침(避雷針)의 역할을 하여온 그이는 한국에 오신 이래 봉헌한 미사성제의 번수가 약 二만三백대이며 성세(聖洗)를 준수는 대인(大人)만 약二천七백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