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일부 정치인들의 불평불만과 또 그런 것을 반영하는 일부 신문 논조를 보면 전국민이 그처럼 통쾌하게 생각하고 전세계 자유인민이 그처럼 찬양한 소위 四월혁명을 한 것이 이제 와서는 도리어 후회 꺼리가 되지 않나 싶다. 사사건건이 새정부에 대한 비난이오 반대요 한마디로 자유당 때보다도 더 못하다는 말이 무슨 유행어처럼 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잘될 것이나 이에 대한 원칙이나 대책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들이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복안도 없이 현하 우리나라의 모든 난관과 이를 즉시 해결하지 못하는 전책임이 현내각에 있는 것 같이 극구 비난 공격을 가하고 있다. 남을 덮어놓고 악하게만 보려는 것 남이 칭찬받는 것을 배앞으게 생각하는 것. 이것은 사람의 악심(惡心) 중에도 가장 악질적인 것이다.
또 요새 신문을 보니 어떤 자유당계의 국회의원이 자기는 반혁명자로 재판을 받을 아무런 죄도 없다고 큰 소리 치더니 특별검찰부로부터의 구속요청이 국회에서 통과되려하자 어디론지 도피하여 자취를 감춘자도 있다. 또 어떤 자들은 혁명재판을 받는 그 마당에서도 자신이 애국행동을 한 것으로 변명하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도 있다. 자유당 때보다 뭣이 낫냐고 말할 수 있는 자유만이라도 누린 것이 혁명의 혜택이요 국토개발과 국책산업부흥으로 국민생활 향상을 달성해보려고 온갖 정책을 내세우는 혁신정부의 수립만이라도 독재탄압, 부정부패의 자유당 때보다 어찌 더 못 하다고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어느 정당을 두둔하고 어느 정당을 배격하는 정국의 논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 성경에 예수께서 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백성들은 이를 보고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감탄하였으나 예수님의 반대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악평하여 마귀로써 마귀를 쫓아냈다고 비방하였다는 사실이 남이 찬양받는 것을 싫어하고 남의선도 악으로 보며 자신에 대하여는 악을 악으로 음폐하려는 사람의 악심을 경계하신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유당정치가 바로 이따위 짓을 하다가 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한 자유당적인 심보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우리는 금일의 우리사회의 이러한 사태를 개탄하고 우리 역시도 남을 비판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든 적어도 우리교우들은 우선 우리스스로 올바른 생활 참다운 행동을 실천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는 남을 걱정하기 전에 우선 우리자신을 걱정해야 한다. 나 자신은 어떠하냐. 나의 잘하는 점은 무엇이고 나의 잘못하는 점은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이 잘못하는 점은 개선하고 잘하는 점은 더욱 향상시킬 것이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일 잘못하는 사람에게 비해서 그보다 자기가 낫다고 만족할 것인가. 그리하여 남에게 대해서는 흉만보고 자신에 대해서는 자랑만 할 것인가.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한자 되어라』 하늘에 계신 성부는 어느 정도 완전하시며 사람으로 어느 정도로 감히 천주님의 완전성을 따를 수가 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우리 실행으로 본받을 수 있는 표준을 바로 성주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베드루> 종도는 「다볼」산에서 우리의 표준이신 예수님의 실제모양 즉 현성용을 뵈옵고 어찌나 황홀했던지 『우리가 여기 있기가 좋습니다』하였다 오늘 성경에는 예수께서 『나와 한가지로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거스림이라』고 하시고 끝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한가지로 모든 것을 행하는 원칙으로 『천주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진복자라』하셨다.
효자는 부모의 말을 듣고 충신은 임금의 말을 듣고 제자는 스승의 말을 듣는 것과 같이 인간은 조물주 구세주의 말씀을 듣고 준행해야 참인간 본연의 사명이 달성되고 또 오직 그때에 인간의 근본 목적달성인 완전 행복도 있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본 민주주의 진리도 이러한 의미의 인간성의 완성과 이 완성을 위한 타인의 인권존중과 자신의 인격적인 책임 완수에 그 기본원칙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다를 수 있고 우리 교우들은 자신의 완성을 통해서 또한 동포사회의 역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丁旭鎭 神父(安城本堂主任 安法中高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