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새로 승품하신 신부님들에게!
몇 주간만 지나면 여러분들은 위대한 사제적 직책들의 한 가운데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시리다. 본당신부로서 혹은 군종사제로서 여러분은 성사를 주시는데 또 강론을 하시는데 피로할 줄을 모르실 것입니다. 특히 강론은 당신이 원하거나 말거나, 준비를 잘했거나 피곤해서 준비를 못했거나 「타고난 웅변가」이거나 혹은 대중 앞에 나가기를 겁내는 천성 때문에 강론 전에는 번번히 가슴이 더 빨리 뛰거나 강론은 당신이 완수해야 할 직무입니다. 신부로서 당신이 강론을 해야 할 때 당신이 말은 교우들에게 말하는 동안에 저질은 모든 과오와 심리학적 잘못을 당신의 청중이 얼른 알아차리고 강론 마다 혹평을 할 것입니다. 당신의 과오가 신학교에서 교정되었던 반면에 이제부터는 당신의 과오를 다시 비판해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성 아오스딩>시대처럼 강론을 들으면서 청중이 찬성이나 불찬성을 고성(高麗)으로 외치는 시대는 지나갔읍니다.
一九五四년에 「프랑스」에서 그리하였고 그 다음에 「이태리」 「애란」 「화란」에서 그러하였듯이 오늘날 신부들이 평신도들과 만나는 특별한 집회를 마련하여 그들과 더불어 강론의 양식과 제목을 논의합니다. 「이태리」의 「밀라노」 대주교 <몬테니> 추기경은 강론으로서는 오히려 약했을지라도 신덕이 충만했기 때문에 많은 교우들을 고해소로 데리고 왔던 <비안네>성인을 신부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 하셨읍니다. 선교황 <비오 十二세>께서는 강론하는 방법을 즉 성경의 양식으로 강론하기를 <바오로>성인으로부터 신부들이 다시 배워야 할 것임을 지적하셨읍니다. <요안 二十三세> 교황의 의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시대에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말하라.』
그러나 평신도를 자신이 무엇이라고 말하나? 一九六년 부활 때에 「독일」의 「뷔르츠부르그」에서 열렸던 지난번 강론 회의에서 간선된 평신도들이 신부에게 대한 十四개 조항의 요구로써 자기들의 비판을 요약했습니다.
一, 강론을 위하여 적당한 시간에 당신 자신을 준비하세요. 당신이 준비를 아니하였을 때 우리 평신도가 그것을 몰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二, 재발 十五분에 마치세요. 더 길었자 아무런 가치가 없읍니다.
三, 우리하고는 무서운 「라틴」어로 또 추상적으로 말하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가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만을 명심합니다.
四, 당신들 신부들 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아니하는(「가나」촌의 언어)를 지껄이지 마세요. 우리는 간단하고 명백하고 비감상적(非感傷的)인 언어를 원합니다.
五, 굉장히 비장(悲槍)한 언사를 쓰지 마세요. 우리는 그것이 정말이 아닌가 두려워합니다.
六, 강론 순서가 뚜렷하여 기억하기 쉽도록 주의하세요. 안 그러면 성당을 나가자마자 우리는 그 강론을 전부 잊어버릴 것입니다.
七, 당신이 그리스도교의 성성(聖性)을 완성한 것처럼 강론을 하지마세요. 자기도 역시 과오를 범함을 승인하는 사람의 말이 더 밀어질것 같습니다.
八, 천주의 말씀으로 배불을 수 있는 밥을 주세요. 우리는 시장하기 때문에 밥이 필요하고 신학적인 곡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九, 우리가 천주와 천주의 신비를 대관(大觀)하도록 해주세요.
十,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마세요. 안그러면 당신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이 짓거리실 것입니다.
十一, 신덕을 우리 일상생활 속으로 비추어 주세요. 당신의 「멧세지」에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정치를 이야기하시되 정당의 정책을 이야기하지 마시고 또 선거가 다가올 때만 정치를 이야기하지 마세요.
十二, 비판해야 할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비판하시되 분노한 언사를 쓰지 마세요. 우리는 모든 죄를 불구하고 천주의 나랏 백성임을 느끼고 싶습니다.
十三, 우리가 세계교회에 속한 사실을 시시로 느끼게 해주세요.
十四, 우리를 낙심케 마시고 용기와 도움과 위안과 안도감과 희망을 주세요.
평신도 편에서 오는 그러한 유익한 비판은 어느 신부라도 감사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만일 청중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양식(樣式)대로 아니하면 결국 모든 강론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신도도 역시 신부에게 대하여 정당한 지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지리」의 어느 본당주임 <훼로탈라> 신부가 평신도에게 대한 자기 요구를 다음과 같이 어느 「오지리」 잡지에 발표했읍니다.
一, 우리의 강론을 판단하시는데 부드러우시기 바랍니다. 본당신부로서의 여러 가지 사무가 어떤 때는 잘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얻을 수 없게 합니다.
二, 제안(提案)도 하시고 비판도 하시되 재발 예모있게 하세요.
三, 당신의 본당신부가 시간을 얻도록 도아들이시오. 쓸때 없는 방문과 이야기로 그 신부의 시간을 뺐지 마세요. 반드시 신부가 아니 해도 좋을 본당 일을 본당신부로부터 맡아가세요.
四, 특히 강론 전에 천주께서 그 전부에게 좋은 생각과 올바른 말을 주사 그 강론의 말이 성총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그 신부를 위하여 또한 기구하세요.
五, 필요없는 논쟁을 그 신부와 더불어 하지 마세요. 그 신부는 자기 사무를 위해, 강론 준비나 마찬가지로 신공을 위해 심적평화(心的平和)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크게 논쟁할 필요가 없읍니다.
평신도에게 대한 그 본당신부님의 제안이 그런 만큼 작년 「뮨닛히」의 성체대회에서 <베아> 추기경이 강론 없는 미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셨읍니다. 그러니까 존경하올 새 신부님들이어, 천주의 소식을 강론함이 이제부터 앞으로 당신들의 숭고한 책임입니다.
『기회가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디모테오 후서 四장 二절) 강론을 잘 하시기 위하여 가톨릭 사제로서도 당신은 <마르틴 루터>가 자기의 강론신부에게 주었던 견책(譴責)을 받아들이시오. 굳건히 서서 입을 벌려 얼른 마치시오.
徐基湖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