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22) 가난(淸貧(청빈))의 참 뜻
발행일1961-03-12 [제270호, 4면]
<마리아 데 헤수스>라는 그 「베아타」는 원시적 수율(修律)의 「갈멜」수녀원 창립의 허가장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과부시절에 「완율(緩律) 갈멜」회에 들어갔다가 허원 전에 환속(還俗)한 그는 <데레사>가 창립의 명령을 받던 그 날에 똑 같은 명령을 오주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테레사>와 달라 자유로운 몸이였으므로 자기 물건을 팔아 몇 푼 안되는 돈을 속적삼에 꿰매어 간직하고 거치러운 배옷을 입고 맨발로 「로오마」로 떠났던 것이었다. 발자국 마다 피 흔적을 남긴 머나먼 길에 지친 어떤 「사람형상」이 자기를 향하여 느릿느릿 오는 것을 <비오四세> 교종(敎宗)께서 이상하게 보고 계셨다. 그러나 강직하게 생긴 그 여인의 용모에 탄복하신 교종은 자부(慈父) 다우신 귀를 기울이사 <마리아>가 아뢰는 말을 자세히 들으셨다.
『용감한 여인이다! 그 여인이 청하는 바를 다 허가하라!』
당시 교정(敎延) 당국은 「역종교개혁」(逆宗敎改革 - Counter-Reformation) 노선(路線) 대로의 수도회 개혁을 장리(奬勵)하였다. <마리아>는 아직도 원시적 수율(修律)을 지켜오는 「말투아」의 봉쇄(封鎖) 「갈멜」 수녀원에 들어가는 허가까지 받았다. 거기서 그는 옛 전통대로의 의복제도 생활양식 도헌(道憲)과 수율의 조정(調整)을 자세히 조사할 수 있었다.
<마리아>가 <데레사>에게 한 이야기는 두 주간이나 걸렸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흔히 지니는 강한 기억력을 타고난 <마리아>는 그 수율 전부를 암기하고 있었다. <데레사>는 그것을 재정리(再整理) 했다.
<마리아>는 머리가 좋아 반복할 만큼 자기가 거쳤던 붉은 부전(附箋)이 붙은 「바티깐」의 공문수속을 <데레사>에게 자세히 훈수했다. 그들이 작별할 때까지 이어 토의한 중요한 점에 관한 양편의 의견이 양편의 찬성으로 강화되었다. 장차 개혁될 수녀원에서는 수녀들이 몸소 노동하여 생활할 것이며 절대로 재원(財源)을 가질 수 없었다. 원시켜 수율이 명하는 가장 기본적 「가난」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으로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순전히 섭리(攝理)만 믿는 것을 미쳤다고 생각할 일이 걱정이었다. 이 점에 관하여 <데레사>는 <이바네쓰> 신부와 다른 신학자들에게 서신으로 문의했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정반대였다. 一五六二년 봄에 「알칸타라」의 <페드로> 수사가 「톨레도」에 오기까지는 이 문제가 활발한 토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十三명의 여성들이 모여서 천주의 사랑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에 열성이 난 <루이사> 부인이 그 거룩한 남자를 자기 궁으로 청해들였다.
고행(苦行)으로 수척한 이 숭고한 노인이 「칼라트라바」궁의 굉장한 별들이 박힌 거울 천정밑에서 자제(自制)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는 길가의 돌멩이를 밟아 딴딴하게 굳어진 발로 대리석을 딛었다. 「코르도바」 가죽의 의자에 앉아 은과 자개가 박힌 흑단(黑檀) 탁자위에 비쩍말은 손을 얹고 있는 그의 금욕적(禁慾的)인 옆 얼굴이 새 「훌란돌산」(産) 벽막(壁幕)을 배경으로 두드러져 보였다. <데레사>가 장차 창립할 자기의 새 수녀원의 절대적 청빈이라는 수율의 기초를 그 노수사(老修士)와 토의한 곳이 바로 이렇게 화려하게 차려진 자리였다. <데레사>가 내 보이는 <이바네쓰> 신부의 서신을 보고 그 노인은 미소하면서 그 유식한 의결을 웃이개로 반박했다.
『그들이 이해도 못할 논점(論点)을 그 신학자들에게 제출하시다니? 나는 놀랐소이다. 완덕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완덕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요. 성경말씀을 쫓는 일이 요긴한가. 아니한가.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으리까?…… 청빈이라는 완덕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으시려거든 그 길이 남성에게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여성에게도 열린 것을 알으셔야지…… 그러나 영성(靈性)이 없는 신학자들의 말을 들으시려거든 큰 재원을 구하시오. 그래 그런 것이 다 예수의 말씀에 순명해서 포기하기보다 당신에게 더 가치가 있나 없나 실지로 겪어 보셔야 될껄.』
<데레사>에게는 청빈의 은총이 있었다.
『나 자신으로 말하면 머리위에 지붕도 없이 천주의 사랑을 위해서 결식(乞食) 해가면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능히 지나는 날이 있소이다. 그러나 그만한 정도까지 갈 각오를 아직 가지지 못하면 불만할 것이오. 생활이 쪼달리면 분심꺼리가 될 것이 걱정입니다.』
<데레사>는 「강신」 수녀원을 생각했다. 노수사는 이어 주장했다.
『그런 수도자들은 자기 뜻을 거스려 가면서 가난하기 때문이지 그리스도의 뜻을 순명할 생각이 없는 바가 아니오. 나는 궁핍한 생활을 숭상(崇尙)하는 것이 아니라 오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위해서 참을성 있게 견디는 가난을 찬양하는 것이니까 사랑을 통해서 갈망되고 포섭된 청빈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지존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대로 마음이 가난한 자 즉 자기 뜻대로 할 생각이 없는 자는 진복자라고 생각합니다…… 오주께 대한 자기들의 사랑을 증진시키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는 재보(財寶)를 다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오주께서 얼마나 달가우신지 사람들이 맛본 일이 없으니까……』
이제 <데레사>는 청빈의 참 뜻도 알았다. 「톨레도」로 온 섭리도 깨달았다. 더 머물을 필요가 없다. 어느 듯 六개월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