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일
이방인(異邦人) <비라도>의 법정에서 동족인 전 민족에게 대역죄인으로 고발을 받고 최대 잔악한 형벌과 十자가에 못박혀 사형을 당하는 최대 비참한 운명을 목전에 둔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엄숙히 선언하신다. 『누가 나다려 죄있다고 하겠느냐』 예수께 대하여 증오에 불타고 그를 죽여 없이하고자 온갖 흉계를 꾸미던 폭도(暴徙)와 같은 당시 「유데아」인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어떻게 들렸을가. 저들은 최악의 표현을 다하여 예수님을 가르쳐 부마한자(마귀와 같은 자)라 댓구하였다.
악의 적은 선이다. 욕심의 반대는 희생이다. 예수께서도 저들의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게 부귀와 공명을 차지하시고 또 저들에게도 그러한 이득을 베푸셨을 진대 예수님은 저들 앞에 만승의 제왕이 되시고 세기의 영웅이 되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세대책(救世對策)은 그와는 정반대로 오직 노고(勞苦)의 희생으로 진선(眞善)의 영복을 마련하시는 것이었다. 온갖 불행은 악에서 나오고 약은 죄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의 구세원칙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받게 하고 악의 불행에서 구출하시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신성한 구세주의 사명을 완수하실 그리스도께 추호라도 죄가 있고 악이 있을 리는 물론 만부당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앞으로 당신이 받으실 수난과 죽음이 절대로 당신 자신의 죄로 인해서가 아니요, 무죄결백하시고 신성 그 자체이신 천주성자 구세주로서의 인류죄악의 구원을 위한 순수한 희생의 순교라는 것을 미리 명백히 선언하신 것이다.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는 데는 오직 무죄한 순수한 희생만이 타당한 것이었고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는 절대 무한의 무죄순결 신성진선의 희생의 댓가가 요구된 것이니 이 위대한 사명을 완수하신 것이 곳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죄악에서는 파멸과 죽음이 나오고 무죄한 희생에서는 창조와 생명이 이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이 무죄한 희생이오. 무죄라기보다 무한히 신성한 희생이기에 전인류의 도덕 윤리의 재건과 영원한 생명이 오직 거기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독재, 폭군, 부정, 부패의 영화가 아무리 일시적으로는 화려한 행복으로 보일지라도 결국은 스스로의 파멸이오 불행의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은 바로 지난날의 자유당 원흉들을 보아도 잘 알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무명의 지방학도로서 김주열군이 四월혁명의 영웅으로 애국청소년의 모범으로 전국민의 찬양의 대상이 된 것은 그의 희생과 죽음이 바로 무죄한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오로지 객관적인 진실과 정의 그리고 이로써 남(동포)를 구해보겠다는 그 숭고한 희생이요. 죽음이었기에 이처럼 빛나는 것이 아닐가.
어느 시대고 어느 사회고 이러한 무사봉공(無私奉公)의 정신이 사람들의 마음 생활에 얼마나 실천되느냐. 이것이 곧 그 시대 그 사회의 구원 즉, 평화와 복지(福祉)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서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를 엄정히 심판하여 볼 때 과연 우리시대에 건설과 안정이 이룩될 것인가 심히 한심을 금할길이 없다. 우리교우로서 신앙생활 그리고 더욱 진실한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이 사순절에 먼저 우리교우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훈으로서 무죄한 순수한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원받기위한 즉 자신과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이러한 희생의 정신을 분발하고 일층 열심한 신심실천과 특히 봉재실천 즉 대재, 소재, 극기, 희생애긍 등을 엄히 실천하는데 전력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丁旭鎭 神父(安城本堂主任 安法中高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