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23) 「성요셉」수녀원
발행일1961-03-19 [제271호, 4면]
<루이사>분인의 가운댓 뜰을 초록이 우거진 바탕에 각색 꽃이 만발하고 거기서 좋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데레사>는 행복했었다. 그는 「강신」수녀원의 원장 선거날을 피하여 그동안이라도 거기서 매일 장시간의 기도에 잠기고 싶었다. 그러나 「일의 주인」 어른께서 그에게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너는 十자가를 원했다. 너를 위해 훌륭한 十자가가 하나 준비되어 있다.』 안윽한 「성 요셉」수녀원을 한 순간도 잊지 못하는 그에게 「강신」수녀원의 원장으로 선거되리라는 것이야말로 十자가가 아닐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 울다가 얼른 눈물을 걷우고 당장에 길 떠날 결심을 했다. 그는 마치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나 전투를 시작하기 전의 초조한 심리를 억제할 수 없었으리만큼 환희로 충만했다. 더위에 상할까바 출발을 연기하라는 고해신부의 권고를 그는 사양했다.
『이번 여행도중에 제가 죽어야 할 것 같으면 저는 죽어야 합니다.』
짐을 빨리 꾸렸다. 작별하면서 우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자기 옷자락에 매달리는 <마리아 데 살라싸르>를 때 밀었다. 그들의 애정에 감동한 그는 한가지로 섭섭해야 할 것이었으나 환희가 솟구쳐 올랐다. 그들의 석별(惜別)이 고마웠으나 심상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 마음이 약해졌으나 과감(果敬)한 용기를 도리켜 행동을 각오하고 길을 떠났다.
<데레사>는 마치맞게 「아빌라」에 도착했다. 그처럼 고대하던 개혁된 「갈멜」수녀원의 창립 허가장이 바로 그날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빌라」의 주교가 재허가(再許可)를 해야만 효력이 발생할 것이었다. 부귀권문의 출신인 <멘도싸> 주교의 의견은 「가난」이란 성경에 의하면 이것도 생활의 한 가지 양식이나 시대에 뒷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재원이 없이』 수녀원을 창립한다는 일은 현상(顯相)을 목도한다는 여인이나 할 것이었다. 재원을 갖든지 창립을 말든지 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난경(難境)에 「알칸타라」에 <페드로> 수사의 편지가 그 주교에게 전달되었다. 그 사연은 「데레사」 안에 천주의 영(靈)이 계시며 또 원래의 엄율(嚴律)을 회복함이 가장 완전한 「갈멜」수도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주교는 「스페인」 전국민이 경앙(景仰)하는 이도 도인(道人)에게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자기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페드로> 수사는 노새를 타고 三백여리를 달려 그 주교를 갑자기 찾았다. 그 주교는 이 위대한 「프란치스칸」이 그 사소한 수녀원을 중대시(重大視)하는데 감명을 받기는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 주교는 자기 고집을 되풀이 했었다.
『나는 가난한 수녀들은 불찬성이야!』
<페드로> 수사가 떠난 다음 자기 혼자 고요히 앉았을 때 「가난부인」을 찬양하던 그 늙은이의 힘없는 말소리가 자기 귀에서 되살아났다. 그 주교는 바로 그날 저녁에 그 「프란치스칸」에게 <데레사>에게 전하라는 「멧세지」를 보냈다.
『「성 요셉」 수녀원은 복음적 청빈의 법에 합치하라.
(二) <데레사>는 본주교의 방문을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 주교가 그 이튿날 「아빌라」로 돌아와서 그를 한번 만나자 완전히 그에게 기울어지고 말았다. 선인(善人)의 변덕은 그와 같이 끝났다.
승부가 났으니 <페드로> 수사는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었으나 <데레사>는 몹씨 우울했다. 아마 이것이 지상에서 최후의 작별이 될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 맨 밥만 먹는 그 가난한 노수사를 「강신」수녀원으로 초대하여 친정에 있을 때 익힌 가락솜씨로 손수 장만한 식사를 대접했다.
눈 같이 하얀 상보 위에 놓인 소박하나 깨끗한 토기(土器)들 그 안에 담긴 최상(最上)의 요리! 눈을 내려 뜨고 그 수사의 뒤에 서서 시종 드는 <데레사>의 모습을 문 밖에서 다른 수녀들이 드려다 보니 그리스도께서 당신 손으로 그 수사를 먹여 주시고 계셨다. 「아빌라」사람들에게 이 「천사의 잔치」 이야기가 퍼졌다.
<페드로> 수사는 자기 영도녀(靈導女)의 하나인 <안토니아>를 <데레사>에게 맡기고 떠났다.
<다싸> 신부는 <우르술라>를 <기오마르> 부인은 자기 시녀 <마리아>를 <홀리안> 신부는 자기 친누이 <마리아>를 <데레사>에게 주었다.
탁월한 사제이며 매력있는 남자인 <홀리안> 신부의 부친은 직조공(織造工)이었으나 수도자와 같이 규칙적으로 기도와 노동생활을 하던 평민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선족(跣足) 갈멜」 회원이 될 이네 처녀들은 장차 개혁운동의 四방 주치돌이 될 인물들이었다.
이제 요긴한 조건이 갖추어졌고 개원(開院) 준비가 신속히 움직였다. <데레사>는 자기 기쁨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러한 행복감이 그의 전 매력을 발산케 했고 지극히 명랑케 했다.
어느 신사가 그의 수녀복(修女服) 밑으로 내다보이는 그의 예쁜발 맵씨를 감탄아니 할 수 없을 만큼 인간적으로 아름답게 했다. 그는 웃음이 터졌다.
『잘 보아 두세요. 머지않아 다시는 더 못보실 테니까?』
그는 자기의 자매들과 함께 가난하게 있어야 할 벽과 살창 뒤로 얼른 숨어버렸다. 그것은 속세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귀찮은 속세와 천주께서 넘칠만큼 충만히 계시는 독처(獨處) 사이에 장벽(障壁)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밤낮으로 아름다운 친구들과 함께 굵은 모직(毛織)천을 말아서 새수녀복을 지었다. 역시 굵은 마포로 머릿보를 말았다. 수녀들이 머리를 만지는 시간을 덜도록 머리털이 착 달라붙게 덮이는 머릿보였다. 머릿보가 삐딱하게 쓰여진 것을 보고 그는 명랑하게 웃었다.
『머릿보를 잘못 쓴 수녀는 시집을 잘못 간 아낙네 같아요……』
소성당(小聖堂)의 문앞에 두주보의 입상(立像)을 모셨다. 「성모님」은 「존귀하신 아드님」을 안으신 목각(木刻)이었고 「요셉성인」은 <데레사>가 자수한 옷을 입고 명주「만또」를 두르고 한손에는 백합화를 다른 손에는 모자를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