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주일
「四순절」도 이제 마지막 일주간, 구세주의 고난의 최후 「크라이막쓰」를 기념하는 성주간에로 접어들었다. 위대한 성공이 이루어지는 최후 최대의 희생인 것이다. 그 공의성과가 바로 전 인류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일진대 이 숭고한 성공이 있기까지는 가히 전인류가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한 모든 희생을 다할지라도 불가능 하였을 것이니 오직 인류구속의 이 대업은 신인(神人) 예수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불가능 하였다는 것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일이다.
오늘 「성지주일」의 교회예절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률 두가지 표현으로 기념한다. 즉 첫째는 인류가 저들의 참 구세주를 맞이하여 기쁨에 넘쳐 구세주를 최대환영으로 영접하는 표현이다. 『<다위>의 자손은 만세무강하소서. 주의 이름을 의지지하여 오신자 복될 지어다』 <다위>의 자손은 구약성서의 의미를 따라 구세주란 뜻이오.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 오신자란 천주 약속하시고 저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천상의 사도 바로 천주성자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과연 역사상으로 이는 개선장군도 어느 만승천자도 성지주일의 예수님만큼 전민족의 그만큼 열광적이오.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자는 없을 것이다.
이는 불과 몇일 후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바로 저들에게 대역죄인으로 고발을 받으시고 가장 처참히 저들의 손에 사형을 받으실 것이나 그러나 다만 일시적으로라도 당신이 참 구세주시요. 참으로 천주성자시요. 장차 당신의 구속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무수한 천주의 나라의 백성들에게 과연 만세 무궁히 찬미와 감사를 받으실 당신 구속사업의 신비를 실제 한번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다.
오늘 전세계 각처 성당에서는 수많은 교우들이 축성한 성지 가지를 손에 들고 성가대의 『<다위>의 자손이여 만세무강하소서』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 오시는 자여 복될 지어다』의 성가를 들으며 장엄한 행렬을 하여 대십자고상을 선두로 천주님의 성전 천상나라의 상징이기도한 성당에로 들어간다. 이는 결코 한 연극이 아니다. 一九六○여년전에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이 한번 있었다. 정도의 회고만도 아니다. 이때에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구새주, 우리 자신의 영생과 영복의 주께 마주나간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의 신앙의 허실을 스스로 심판해야 할 것이다. 구세주는 우리에게 오신다. 우리는 구세주께로 마중 나가야한다. 구세주께로 마중나가는 정신과 행위,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기도의 실천에서 각 성사배령에서 미사참예에서 특히 영성체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덕행과 또한 특히 그 고난을 우리도 몸소 본받는 실생활에서 우리는 간단없이 그리스도 앞에로 마주 나가고 그와 같이 머므르고 그와 함께 생활하는 것 여기에 신앙생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세속의 영웅과 제왕들은 자기 민족과 국민의 박수갈채와 대대적인 환영을 받음으로써 그 성공 승리가 끝난다. 그러나 전인류의 죄악을 정복하시고 자신에게 보다도 전인류에게 참 구원 영원불변의 생명과 복을 주시려는 천주성자 구세주의 성공은 이 위대한 사명을 완전무결하게 완수하시는 것을 자신의 최대 고난과 최후 희생으로 끝마치는 것이다. 구세주의 승리는 바로 그 참혹한 고난과 十가상의 희생이 완수되는 시각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마쳤다』 즉 내 사업을 내 사명을 마침내 완성하였노라 하신 것은 전백성의 최대 환영을 받으시며 개선자와 같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가 아니고 오히려 十자가상에서 가장 불쌍한 패배자와 같이 마지막 숨이 지실 때였다.
오늘 예절의 제二부인 미사에서 성지 예절 때와는 정반대로 가장 슬픈 심정이되여 그리스도의 수난복음을 낭독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六·三五 같은 때 꼭 죽을 것을 누가 살려 주었다면 그것도 자기 생명을 희생해가면서 나를 살려준 은인이 있다면 나 자신의 그에 대한 심정과 태도가 어떠할 것인가.
『예수다시 큰소리를 발하시고 영 그 혼이 떠나시니라』 수난성경 여기까지 낭독하고는 대만원을 이룬 모든 교우는 사제와 한가지로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잠시 침묵한다. 이 고요한 침묵, 천주성자가 나 자신을 위하여 죽으신 순간, 그것도 바로 나 자신이 나의 죄악이 바로 저를 죽인 그 순간 우리 맘에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우리의 가슴속 깊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슬픔과 통하는 뜩금한 불신앙과 죄에 대한 비통한 슬픔을 이 순간에도 한번 절실히 느껴 보지 못한다면… 아… 나 자신의 신앙이란 과연 무엇이랴.
四十일 봉재성시라 하였지만 우리는 과연 몇일이나 우리 죄의 통회보속으로 재를(어려운 희생, 극기, 선행, 대재, 소재 지키는 것 등) 실천했는가. 그야말로 거룩하게 지냈다는 날이 몇일이나 되는가. 이제는 앞으로 일주간 밖에 안남았다. 이 한 주일만이라도 미사참예·성로신공·두번의 소재·하루의 대재를 충실히 지키고 그중에도 목요일부터의 성三일은 더욱이 특별히 열심을 가지고 성당예절에 참예하며 특히 무엇보다도 한사람도 빠짐없이 진실한 고해 영성체를 하여 금년부활을 각별히 뜻있게 맞이하자.
丁旭鎭 神父(安城本堂主任 安法中高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