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의향
▲일반교우를 使徒的(사도적) 협력
▪「가톨릭 악숀」과 교회 당국의 사도직을 위한 기타의 평신도-단체들의 임무 완수로 사제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가톨릭 악숀」이 사제의 부족을 보충함은 이제까지 시제들만이 해야하던 임무를 평신도들이 완수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악숀」이 그 특수한 사명을 통하여 사제성소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기도의향이 말한다. 이것이 「가톨릭 약손」의 각 단체가 평신도들에게 성사생활만을 격려(激勵)함으로써 이루워질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물론 성사 생활이 신덕의 내적(內的) 중심이다. 그러나 「가톨릭 악숀」에 대하여 교황 성부께서 기대하시는 희망은 평신도들이 자기 신덕을 일상생활에 실지로 응용하도록 「가톨릭 악숀」이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교회의 초대 수세기(初代 數世紀) 동안 사제성소가 광범히하고 방대하였다. 당시로 말하면 그리도교도들이 자기들의 전례행사(典禮行事) 이외에 자기 끼리 모이는 다른 집회가 있어 거기서 자기들의 개인생활을 그 신덕의 빛으로 계몽하도록 서로 도왔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신심단체가 시로 부문(部門)을 달리하여 창립되었고 바로 그것이 그들을 남들에게 극히 매력있게 만든다. 그와 동일한 경우를 자기들의 신앙에 관한 공통된 이야기를 하고자 모이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일치」 운동에서 볼 수 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도 공동 기구와 성사 받기와 단체상 문제의 토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일상 직업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활동에 우리 신덕을 올바로 응용하는 길을 서로 발전하기를 돕기 위해 모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악숀」의 주목적(主目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목적이 종교와 직장 생활, 종교와 정치, 종교와 경제를 서로 분리하려는 현대 사정으로 쉽사리 약화될 수가 있다. 그러한 경우가 물질, 기계 그리고 모든 지상(地上)의 권세를 숭배함으로써 인간이 우상화하는 곳에 있다. 그와 반대로 어떠한 그리스도교도라도 그의 일상생활이 천주의 영광을 간단없이 현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톨릭 악숀」의 활동과 평신도들이 자기 고유의 리스도교적 생활을 토의하는 신심 회합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신덕을 응용하는 생활 즉 그리스도안의 생활이 사제성소를 많게 하는데 가장 효과적 기반을 닦을 것이다.
■ 전교지방
▲외국전교 위한 성소 증가를
▪신자들 가운데 선교사 성소가 많기를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구미(歐美)의 구교(舊敎) 국가에서 선교사 성소가 많기를 강조하는 「선교-기도-의향」이 무엇보다 앞서는 것인 동시에 「한국」을 위하여 크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五四%의 사제들이 한국 출신이나 가톨릭교회를 아직도 모르는 九八%의 「한국」 인구를 그리스도신자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아직도 오랫동안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의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개종 사업이란 될 수 있는 데로 많은 사람들을 영세시킨다는 뜻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정치 질서, 사회 형태, 경제 정책 그리고 문화 분야에 침투시킨다는 뜻도 된다. 이 과업이 특별히 훈련된 사제들과 평신도를 다수(多數)로 요청한다. 그러한 전문가들을 우리나라에서 소수(少數)인 가톨릭신자들 가운데서는 우리 요구(要求)데로 기대할 수 없는 만큼 「구미」인 전문가들이 성속(聖俗)을 막론하고 「한국」의 개종을 위하여 무보수로 봉사할 수 있다.
많은 「구미」의 외방 전교회들이 작 전교국의 모든 요청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수를 얻기가 곤란하다. 그러므로 <요안 二十三세> 교황 성부께서 一九五七년에 돌리신 「선교」회칙 안에 각 전교국을 직접으로 협조할 가능성을 고려하라고 구라파의 각 교구에게 호소하셨다. 一九六一년 五월에 선교 전문가들이 「비엔나」에서 범「구라파」적으로 모여서 그러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토의할 것이다. 가톨릭 사회 기관들, 「가톨릭 악숀」 본부들, 가톨릭 언론 기관들과 전교국들과의 직접 관련이 점점 더 밀접해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전교국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서 만일 「한국」의 교회가 또한 그네들과 접촉을 아니하고 또 상호가 긴밀한 합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목적이 없으면 「구라파」의 가톨릭 단체들의 모든 연구가 효과 없이 될 것이다. 「한국」 교회가 계속적으로 물질적 원조를 「오지리」 교우들로부터 얻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한국」에 있어서 교회의 사명을 위한 정신적 및 지성적(知性的) 합작에 흥미를 가진 동일한 가톨릭 단체의 원조를 얻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구미」의 가톨릭 기관들 및 단체들 및 교구들과의 구체적인 접촉과 합작을 통하여 우리는 사제들과 평신도들 가운데 다수의 성소를 모으는데 그들을 도울 것이다.
이 기구 의향은 「한국」과 같은 전교국에서의 선교·성소를 또한 지향(志向) 한다. 장차 「북한」「만주」「중국」의 우리 동포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가져다줌이야말로 성소를 막론하고 우리 「남한」 가톨릭의 과업이 아니겠는가? 자기 고향의 마을이나 고을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이 이웃 나라로 나가서 외국인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려는 이 선교정신을 이제 벌써부터 강조함이 바로 이 달의 기도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