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 양을 치는 착한 목자의 비유에 대해서는 네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착한 목자는 곧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고 「시랑」이는 마귀이고 「양」은 신자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양의 우리」는 곧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양 하나 하나를 아는 것과 같이 착한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항상 우리를 한사람 한사람 알고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가까이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며 우리를 위해서 「시랑」을 대적하여 싸우시며 자기의 생명을 바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사랑하시며 우리생활의 미소한 점까지 다 잘 아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한방울 한방울 흘린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사랑으로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 신자들은 이 얼마나 안전하고 힘있는 것이겠습니까.
더 한층 나아가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이 해로운지를 똑똑히 알으시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착한 목자로서의 온갖 자격을 갖추시고 또한 착한 목자로서의 온갖 본분을 다 하십니다. 그러나 양들 즉 우리 신자들은 이런 착한 목자의 은혜를 저버리고 때로는 착한 목자에게 반항하여 양의 우리를 빠져 나갑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착하신 목자에게 순진한 양과 같이 순종하였나 또는 착한 목자의 은혜를 저버리지나 않았나 우리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읍니다.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양과 양의 「우리」가 커짐에 따라 자기를 대신하여 자기 양을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할 목자를 두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착하신 목자 예수를 본 받지 않고 목자의 잘못으로 「시랑」이에게 많은 양들을 빼끼고 맙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신 많은 목자들은 돈과 자기 유익을 위해서 양들을 지키고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위험한 경우에 있어서는 양을 버리고 다라납니다. 많은 신자들 중에도 나쁜 양들이 많습니다. 목자들에게 순종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 풀을 뜯고 양의 「우리」를 탈출합니다. 우리는 더좀 착한 목자 더좀 착한 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착한 목자 착한 양의 비유를 가지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그려 봅시다. 우리는 오늘날 온갖 거짓에 뒤덮인 즉 이리떼 속에서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착한 지도자 착한 양들을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읍니다.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보십시요. 종교를 신봉하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자칭 신과 동등시될 것을 꾀하게 까지에 이르렀고 그들 중에는 신을 반역했던 <루치펠>을 그대로 재연출하고 있읍니다. 정치가라면 즉 지도자라면 그래도 유식하고 애국애족하는 양심적인 인물이라야 하거늘 그들은 썩어 빠저 다 죽어 양심에 입만 살아가지고 국민 앞에 착한 목자의 탈을 쓰고 나스며 그들에게 양을 즉 정치를 맡겨 주기만하면 착한 목자의 탈을 벗고 맘니다. 모든 감투 벼슬에는 정가(定價)가 딱 붙어있어 인격이나 자격보다도 돈 보따리가 행세를 부리게쯤 되어 있읍니다. 이 또한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이 험악하고 이리떼가 날뛰는 세상에서나마 우리는 착하고 어진 양이 되기로 노력하여야 하겠읍니다. 또한 착한 목자와 같이 항상 「시랑」이를 대적하여 싸워야 하겠읍니다.
金玉均(바오로) 神父(서울교구장 비서 겸 출판부장)